EP.5 : 세 번째 데이트

너의 마지막 모습은

by 여행자 빅토르

"Loving can hurt, loving can hurt sometimes. But it's the only thing that i know.

When it gets hard, you know it can get hard sometimes. It is the only thing makes us feel alive."

- Ed Sheeran <Photograph> 中 -


세 번째 데이트는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다. 내가 바쁜 만큼 그녀도 나 못지않게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평일에 회사를 가고 주말에는 촬영을 하는 일정이지만, 그녀는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 일하고 퇴근 후에는 개인 부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평일 일정을 잡는 것은 꽤나 어려웠다. 주말엔 내가 일을 하고 그녀는 이미 잡힌 약속이 있거나, 평일에 쉬지 못하기 때문에 주말 하루는 꼭 쉬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데이트는 이전처럼 2주 간격이 아니라, 더 길게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복절이 껴있던 연휴, 광복절날 오전 그녀에게서 갑자기 DM이 왔다.


" 지금 너무 상황이 복잡하고 정신없어서 좀 지쳤어, 상황이 해결되면 내가 전화할게"


그렇게 금요일이 있던 광복절 오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그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지금 그녀가 지치고 정신없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고 불안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상황이 놓여있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언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 외국인과의 연애가 처음이었다면 무슨 일인지 캐물었겠지만, 그냥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일반적인 한국의 연애와 다르게 서구권 연애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연인 사이여도 매일 연락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특히나 이동할 때마다 위치를 알려주어야 하는 한국식 연애는 최악의 연애로 꼽히기도 한다. 개인주의 문화권이라 개인의 삶에 더욱더 무게를 두는 것에 초점이 잡힌 연애를 한다.


또한 관계를 빨리 정의하지도 않는다. 한국과 달리 썸 타는데 3개월에서 6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나도 처음 러시아 사람을 만났을 때 그런 문화 차이로 많이 다투었다. 서로 다른 것인데 그런 부분들을 잘못된 것이라 받아들이고 인식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몇 번의 국제 연애를 거친 덕에 이제는 그 연애 문화에 적응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지 않은 이유도 아직 연인 사이가 아닌데 일일이 캐묻는 것은 자신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전, 조선팰리스 호텔 촬영을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그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로비에 앉아 그녀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먼저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최근 업무 스트레스로 많이 지쳐 있었고, 이사를 준비하던 중 보증금 문제까지 생겨서 화가 많이 났다고 했다. 감정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나와 연락을 하다 본인도 모르게 말실수를 할까 봐, 조금 진정된 후 연락하려고 이틀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본인도 힘든 상황인데 나를 배려한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의 집으로 당장 달려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후에는 대학교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피자와 파스타로 배를 채우고 유튜버 '궤도'가 차린 카페에 갔다. 디저트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단 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디저트 사진을 보내주며 나중에 같이 오자고 말했다. 그녀는 본인도 달달한 게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니 케이크와 버블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집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집 근처 카페를 검색해 케이크와 버블티를 배달해 주는 카페를 찾았다. 그리고 초콜릿 케이크와 말차 버블티를 주문해 그녀의 집으로 보냈다. 한 30분 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놀랐다고 했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싶었는데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는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You made my day"


나는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I wanna make your every single day, Forever."


친구들과 약속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에게 내일 퇴근하고 회사 앞으로 갈 테니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당연히 좋다고 했다. 수영 수업이 있는 월요일이었지만, 그녀와의 데이트라면 무엇이든 미룰 수 있었다.


다음 날, 퇴근 후 그녀와의 데이트가 있는 월요일. 평소 출근 복장과는 다르게 옷도 깔끔하게 입고 머리에는 왁스를 발라 스타일링을 했다. 오후 네 시쯤 ,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 꽃집에 들렀다. 그녀에게 줄 꽃 선물을 골랐다. 꽃을 들고 사무실로 올라가면 꼰대들이 누구 주려고 산 꽃인지 물을게 뻔하여 1층 프런트에 상황을 설명하고 꽃을 맡겼다.


퇴근 후 그녀가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로 왔다. 꽃을 든 손은 뒤로 숨긴 채 포옹을 했다. 포옹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녀에게 준비한 꽃을 건넸다. 어린아이가 어린이날 원하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앞으로 더 자주, 더 예쁜 꽃을 선물해 그녀가 행복해하는 예쁜 모습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을지로에 위치한 '힛토'라는 이자카야에 갔다. 월요일이었지만, 내가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사시미, 초밥, 파스타, 가라아게가 나오는 2인 세트를 시키고, 맥주도 한 잔 주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녀가 말했다.


“I feel like we're already dating, we text every day and we know what each other’s doing.”


이미 사귀고 있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기분은 좋았지만,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다. 그냥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우리가 사귀게 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이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왔다. 밥 먹기 전에는 오지 않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우산을 안 가져왔을 것 같아서 나는 우산을 두 개를 챙겨 왔다. 하나는 같이 쓸 장우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집에 갈 때 들고 가도록 가방에 들어가는 조그만 우산이었다.


우린 장우산을 함께 쓴 채 천천히 걸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는 내 팔짱을 꼈다. 우리는 비 내리는 을지로 3가 어느 신호등 앞에서 키스를 나눴다. 키스 후,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걸었다. 세운상가를 지나 청계천 다리 아래에 잠시 앉았다. 그녀는 꽃 선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꽃 선물해 줘서 다시 한번 정말 고마워."


꽃을 들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직장 생활하며 수없이 걸었던 청계천이지만, 오늘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피곤한지 옆에서 계속 하품하는 그녀에게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줄 테니 집에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그녀가 배우는 라틴 댄스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배우는 라틴 댄스는 남자와 여자가 파트너가 되어 추는 춤이다. 그녀가 지난 주말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에서 남자 파트너 분이 그녀를 되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 같았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물었다.


"Are you jealous when I dance with other guys?”


나는 질투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아직 우리가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미래에 사귀게 되어도 네가 좋아하는 라틴 댄스 계속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여러 남자들이 질투해서 다투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인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그녀에게 작은 우산을 건넸다. 예상하지 못한 나의 준비성에 놀란 그녀는 내 볼에 입을 맞추며 늘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리는 날, 명동성당 앞 버스 정류장에서 우린 굿바이 키스를 나눴다. 그녀는 키스 후에 버스에 올라탔다. 그 모습이 내가 그녀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