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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Mar 30. 2022

이것은 우정인가요?

사람, 사람들 그리고 1

 "혹시 아는 사람 없으면 나랑 앉을래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신입생 OT날, 대절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서 있는 데 먼저 말을 걸어 준 친구가 있다. 하얀 얼굴에 작은 키를 가진 여자애였는데 얼떨결에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아니 사실 걔가 말하고 나는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의 나는 더욱 낯가림이 심했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는 말을 잘 못했다. 게다가 나는 '친한 척하는 사람'을 싫어했기에 안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친근하게 구는 그 친구가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OT 내내, 그리고 OT를 다녀오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하고 밥을 먹자, 같이 교양 과목 듣자며 나에게 접근(?)을 했고 어느 순간 캠퍼스에서 내내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매일 연락하고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내다가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연락을 무시하며 사이가 소원해졌다. 왜냐하면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계속 나에게 투덜대고 비꼬고 함부로 대하면서 점점 화가 나던 차에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데 오직 나만 모르게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헤어진 거에 큰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작은 말다툼 끝에 예의 없는 그녀에게 화가 나서 버럭 화를 낸 뒤 벙 찐 친구를 두고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데 웬 간 해서는 웃으며 넘기고 기분이 상하더라도 삼키는 편이지만 선을 넘으면 그냥 그 사람을 잘라냈다. 이 친구 이전에도 몇 명 정리를 한 사람이 있었고 친구에게 화를 낼 때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도 내 성격을 알기에 우리는 이제 끝난 사이란 걸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매년 내 생일에, 명절에, 새해에 친구는 선물과 안부 연락을 보냈다. 그 뒤 한 번도 만나지도 않고 일상적인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꼭 무슨 날이면 친구에게 한 통 씩 연락이 왔다. 몇 년이 지나 친구에 대한 화가 풀리고 나서(사실 왜 화가 났는지도 희미해질 무렵) 생일 축하한다는 친구의 연락에 '너는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라고 답을 했다. 뜻밖에도 친구는 만나자고 했고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나는 그날 내가 왜 그냥 갔는지, 그리고 그동안 그녀 툭툭 던지는 예의 없는 말과 행동들에 엄청 화가 났었음을 말했다. 그리고 친구의 답에 조금 당황했다. 당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첫 연애를 시작했었는데, 친구는 그게 너무 서운하고 질투가 났었다고 했다. 자기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질투였다고 한다. 나랑 가장 친했는데, 내가 가장 우선순위였던 친구였는데 그냥 남자 친구가 생긴 거가 싫었다고 그러다 보니 괜히 투덜대고 막 말했다고 사실 화풀이였다고 그러다가 내가 화를 내니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속상해졌다고 했다. 


 "나는 네가 처음에 나 싫어했던 거 다 알았어! 너 나 피했잖아? 내가 일부러 더 오기 생겨서 붙어 다녔어!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그리고 네가 사람들이랑 주말에 만나는 거 귀찮다고 해서 나는 주말에 놀고 싶어도 한 번도 너 부른 적 없어. 문자 귀찮다고 해서 연락도 늘 내가 먼저 하고! 문자 답도 성의 없고 이모티콘 하나 없고!"


 미안했다는 사과 뒤에 서운했던 점을 다다다 말하는 왠지 익숙한 대화였다. 이거 내 남자 친구가 하던 소리 같은데? 친구랑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조금 우습다가 문득 과거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중학생 때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이 놀던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서 혼자 다닌 적이 있는데, 같은 반에 있던 여자애가 왜 혼자 다니냐며 묻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 때 그 친구와 또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 그 친구랑 항상 붙어 다녔는데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글씨도 예쁘고 말도 조곤조곤하던 어른스럽던 그 친구를 나는 엄청 동경했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추운 겨울의 한 복판 내 생일날, 집 앞으로 나와보라는 친구의 연락에 내려갔더니 당시 내가 즐겨 먹었던 간식들을 모은 상자를 들고 친구가 웃고 있었다. 그날의 차가운 바람, 웃던 친구의 얼굴, 박스 가득 들었던 간식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고 두근두근 했던 설렘과 기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생생했다. 


 내가 그때 느낀 설렘도, 친구가 내 남자 친구를 상대로 한 질투도 보통 연인 사이에는 흔히 있고 별스럽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친구들도 나도 다 남자 친구 있고 남편 있고 남자 아이돌 좋아하는 여자들인데 애인에게 할 만한 감정을 느낀다는 게 이상한건가 싶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의외로 다들 친구에게도 질투도 하고 서운함도 느끼고 반하기도(?) 한다고 했다. 


 사랑하는 연인이랑 헤어지면 남이고, 친한 친구랑 절교해도 남이고, 연인 사이에 질투하거나 서운하듯, 친구사이에도 질투하고 서운하고. 이런걸 보면, 우정도 사랑의 한 형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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