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집사의 신혼일기 1
나는 어릴 때부터 허약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형제들에 비해 잔병치레도 잦고 기질이 예민해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도 안 자고 칭얼댔다고 한다. 그리고 입도 짧고 편식도 심하면서 미각은 좋아서 음식도 먹는 음식만 먹었다고 한다. 그런 예민한 아이는 자라서 예민한 어른이 되었고, 비슷하게 예민한 성미의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연애를 하고 결혼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 가지이다.
먼저 우리 부부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육아', '아이를 돌봄', '아이와 시간을 보냄'을 좋아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육아만 봐도 질린달까? 웃는 아이는 귀여우나 우는 아이는 난감하고 귀여운 아이는 좋지만 못되고 사고 치고 아이는 싫은 그런 사람들이다. 아이가 언제나 이쁘고 착하고 얌전한 존재가 아닌데 귀엽고 착한 순간의 아이만 좋고 다른 순간의 아이는 싫은 마음으로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아이를 미워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 건강이다. 나는 자연임신은 어렵고 노력이 많이 필요한 몸 상태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돈과 노력을 기울이면 임신이 가능하나 굳이 그렇게 까지 할 의지가 나에게 없다. 설령 의지가 있다 해도 내가 사는 이 지역에는 난임치료가 가능한 산부인과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문제이다. 일단 우리는 무주택자이다. 가진 집은 없지만 공공임대주택 등을 받기에는 애매하게 조건이 안된다. 또 지방으로 내려오며 나는 일을 관두고 남편만 버는 외벌이가 되었다. 둘이 벌 때에 비해 소득은 반으로 줄었고 이곳에서 나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정도만 가능하다. 남편의 벌이로 우리 둘이 지내고 노후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하나 여기에 '양육'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마이너스가 된다. 지금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지낼 수 없고 허리띠를 바짝 조여매고 살아야 한다.
위의 이유를 말하며 아이를 안 낳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일단 낳아봐. 낳으면 얼마나 예쁜데. 애는 싫어도 내 애는 달라. 애 싫단 사람들도 자기아이는 이뻐하더라."
"집은 애 생기면 청약기회 더 생기고 너희 정도 벌이면 애 키우는데 충분해. 너희보다 돈 없는 사람들도 다 애 낳고 잘 살아. 뭐 그리 미리 걱정하고 욕심부려."
"지금이야 좋지. 나이 들어서 외롭고 후회한다."
"그래. 낳지 마. 자신 없으면 안 낳는 게 맞아. 나는 애를 그렇게 가지고 싶어 가졌는데도 애 낳고 우울증 오고 너무 힘들었어. 애 안고 운 적도 많고 애가 너무 밉고 그랬어. 그런데 애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낳으면 더 그럴 텐데 애한테 못할 짓이다."
"맞아. 둘이 잘 살아. 지금처럼 여행 다니고 둘이 사이좋으면 됐지. 요즘 같은 시기에는 안 낳는 게 맞는 것 같더라. 네 동생한테도 낳지 말고 그냥 너희처럼 살라 그랬어."
"나이 들어서 애한테 기대 살 것도 아니고 지금도 부모 모시는 사람 없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애를 낳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해 준다. 오히려 회사 상사나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등 적당한 친분만 있거나 혹은 처음 본 사람들은 우리의 결정에 기함하며 반대한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지지해 주기에 우리는 딱히 아이에 대한 압박이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고양이를 입양했다. 수치로 정답으로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을 때, 아이를 낳아 키울 때의 행복이 100이라면 고양이를 입양해 기르는 행복은 그에 훨씬 훨씬 못 미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아 키울 때의 비용과 책임이 100이라면 고양이는 1도 안될 테니까. 아이 대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아이 대신 우리가 평생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우리에게는 고양이가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