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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May 16. 2023

상실 그 후

  나는 너를 차가운 변기 속에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핏덩이들 중에 어느 것이 너인지, 또 어느 것이 나의 자궁벽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으므로. 나는 너의 어떤 형체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너의 세포들을 이루었던 입자들은 그렇게 먼지들의 일부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너를 받아들이고 나의 몸은 부풀어 오르는 중이었다. 자궁과 유방은 물론이고 조금씩 살도 오르고 있었다. 다섯 살 꼬마 녀석도 엄마 배를 쓰다듬으며 동생을 기다리는 마음을 키워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너의 다 자라지 못한 몸은 내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갔고, 풍선에 작은 바늘구멍이 생긴 것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서서히, 부피가 줄어들고 있다. 네가 가고 나자 네가 오기 전으로 나의 몸은 되돌아가고 있다.


  네가 온전히 자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엉엉 울음을 토해내던 나를 향해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 했다. 그리고 자연 유산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배아의 염색체 이상이며,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힘주어 덧붙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간의 나의 행적을 톺아본다.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빨래를 갰기 때문일까. 성가신 사람이라는, 임신했다고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아무렇지 않은 척 야자감독을 했기 때문일까. 엽산 먹는 걸 이따금 잊어버려서일까. 안아달라는 다섯 살 꼬마의 칭얼거림을 떨쳐내지 못해서일까. 뻐근한 골반 근육을 풀어보려고 한 스트레칭이 무리였을까. 급식이 나오지 않았던 날 컵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웠던 게 문제였을까. 매일 아침 커피 마시는 걸 포기하지 않아서였을까. 회식 때 회를 먹었던 게 문제였을까. 나는 너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임신을 너무 수월하게 여겼던 걸까. 나의 잘못은 전혀 없는 걸까. 만약 내 난자의 염색체 이상이 문제였다면, 그렇다 해도 나는 결백한 것인가.

  어떻게 했어야 나는 너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원인이 없다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이 원인이라는 말로 치환되어 뇌리에 새겨진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담아 이미 파편이 되어버린 네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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