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마음

포항 지진을 떠올리며

by 세 번째 달

큰 흔들림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나는 2017년 포항 지진 생존자다. 지진을 경험한다는 것은 죽음을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한동대학교 학생으로 학관(학생식당)의 작은 공간에 3명의 학우들과 함께 있었다. 전진 증후가 왔을 때는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전진을 넘겼고 함께 있을 팀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동대학교는 학생들을 팀으로 묶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친해질 수 있는 제도가 있고 매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를 준비한다. 이때, 영화 패러디하기와 같은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재난 영화 따라 하기는 어떤 것 같냐.'라며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철없이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선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몸이 얼어버렸다. 순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옆에 있던 새내기 친구도 많이 놀란 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나는 급하게 그를 책상 밑으로 끌어내렸다. 진동이 멈추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카페에 있던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학생회 학우로 추정되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안전모를 쓰고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그때 문득 누나와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먹통이었다. 순식간에 전국의 통화가 포항으로 몰려 서버가 버티지 못하고 터진 것 같았다. 무작정 기숙사로 뛰어갔다. 그렇게 3층까지 올라가 여자층으로 가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였다.


"우리 둘 다 운동장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얼른 여기로 와."


당시 누나와 여자친구는 같은 방을 공유하고 있던 방순이였고 전진이 일어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채고 이미 밖으로 나가있었다. 그렇게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겨우 만난 누나와 여자친구는 다행히 무사했다. 나는 당시 부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 팀의 사람들을 챙겼어야 했는데 우선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는지 인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급하게 연락을 돌리고 다친 사람은 없는지, 혹여나 사망한 사람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고 학교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확인했다. 그 이후에는 추위와 여진이 문제였다. 11월 15일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벌벌 떨기 시작했고 학생회에서는 담요와 핫팩을 나눠줬다. 운동장의 큰 조명이 있었는데 그게 무너질 수도 있으니 운동장 가까이로 모여 붙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에는 금이 갔고, 벽돌이 떨어지고 어수선하고 위험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학생들을 급하게 집으로 보내야 했다. 짐을 챙기러 기숙사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누나가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짐은 나중에 챙겨도 된다고 말해서 나는 급하게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지진이 난 순간부터 얼마 안 가서 많은 취재진들이 학교로 왔다. 어떤 기자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고 너무 지쳐버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속으로 '집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다. 지진이 난 이후 학교는 2주간 휴교 결정을 했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나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세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부산에 잘 도착했고, 부모님께서 따뜻한 밥을 차려주시며 잘 왔다고, 건강하게 잘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론, 유튜버들이 학교로 오기도 하고 기숙사로 무단으로 들어가 시끄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서 쉬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회복을 했다. 그 이후로도 작은 흔들림이나 쿵 하는 소리에 놀라고 어딘가에 가면 위에 무언가 떨어질 게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진이 나면 다 쏟아질 텐데.' 하며 생각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몇몇 교수님들은 인터넷 방송을 열어 이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지진 트라우마를 오픈했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학생들도 많았고,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한 목사는 이 지진이 예정된 것이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특정 집단의 강연으로 인해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혹은 한동이 벌을 받을 행동을 하여 재난을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뉴스와 유튜브에서는 한동대학교의 입시 수준을 평가하며 '지잡대'라는 단어가 댓글에 나오기도 했다. 2차 가해와 피해가 계속해서 생겨나기도 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공감하는 공동체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뉴스를 통해서 포항 지진 이재민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지진으로 인해 주거가 불안정해진 사람들이고, 체육관에 모여서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와디즈'라는 단체에서 소셜 임팩트 공모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이들의 존재를 알리는 사진전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산에서 포항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이재민들이 상처를 받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구체적인 기획서를 작성하고 실제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있다고 우리도 지진의 피해를 입었던 학생들이라는 진정성이 와닿았는지 그제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소망은 일상이었다. 그렇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 엽서를 만들었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었다. 한동에서, 포항 시내에서, 대구에서 3회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일을 했다. 방송에도 나가고, 기사로도 이를 알렸다. 지진이라는 흔들림을 통하여 연결된 어떤 회복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면서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그렇게 큰 흔들림은 아니라고. 그때보다 더 큰 흔들림은 없다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꿈꾼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흔들리는 서로를 붙잡아주며 괜찮다고 다독이며 나아갈 것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