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을 과하게 많이 넣어주셨던
고소한 간장 계란밥을 좋아한다. 간장을 적당히 넣고, 참기름과 함께 밥이랑 계란이랑 비벼 먹으면 그만큼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따로 없다. 지금도 배가 고프고 침이 나올 정도로 간장 계란밥이 생각난다. 특히,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간장 계란밥이 있는데 맛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애정이 담긴 요리라서 그렇다. 우리 할머니의 간장 계란밥이다. 친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어서 늘 절뚝이며 다녔다. 그런 할머니께서 누나와 나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서 간장 계란밥을 하면 불편한 몸으로 항상 간장을 많이 넣어주셨다. 손이 떨려 조절을 할 수가 없어서 확 쏟아지는 간장을 보며 '나는 오늘의 음식도 짜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 해준 음식이라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 오늘도 너무 맛있었어요.'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는 장애인의 삶이 어떠한지 조금 더 배우게 되었다. 장애인의 삶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사고나 아픔으로 인해 언제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투석을 하며 살아야 했던 삶이지만, 어디를 가든 유머를 잃지 않았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삶이 너무 힘들 조건들만 가득했던 할머니이지만 웃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마저 포기했으면 아마 삶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2학년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내게 담임선생님께서 할머니의 소천 소식을 전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이 넘어진 나를 친구들이 붙잡고 겨우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풍겨왔던 정겨운 냄새도 그리웠고, 작은 놀이터, 오락실, 문방구. 할머니가 준 용돈으로 누나와 놀았던 기억이 생생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렸고, 그 돈으로 할머니는 우리에게 용돈을 주었다. 허름한 갈색 가방에서 용돈이 나올 때마다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으로 할머니에게 선물을 하나라도 사드릴걸 하는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알려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라고. 어떤 번지르르한 조건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옆에 있는 사람과 깔깔대며 살아가라고. 이제는 내가 간장 계란밥을 만들어 먹는다. 할머니가 넣었던 간장보다 덜 넣으면서. 그러나, 과하게 많이 넣어주셨던 간장이 이제는 애정과 사랑임을 안다. 그 간장 계란밥을 먹으며 나는 사랑으로 자라났다.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면, 내가 할머니에게 알맞은 간으로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싶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할머니를 다시 한번 안아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