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이야기
책을 시작하는 프롤로그의 첫 단락이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연구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을 공론화(公論化)한 대가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일생 동안 감당해야 했던 비난의 무게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주제는,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금기시되는 단어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수지가 죽었을 때, 침실의 커튼이 굳게 닫혀 있던 모습이다. 햇빛으로부터도, 새와 나무들로부터도,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와 경치로부터도 모두 격리된 채 죽어갔다는 것에 슬픔이 사무쳤다.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수지라는 친구의 어둡고 칙칙한 죽음과, 창문으로 들판과 과수원이 바라보이던 침상 위에서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여 맞는 과수원 아저씨의 죽음. 이 상반된 임종 장면은 어린 시절 저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죽음은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를 배제하고 보호자나 가족을 상대로 해왔다.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환자는 제삼자가 되었던 것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십 대의 나이에 국제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함께 의료인의 길을 걷던 남편 매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를 한다. 특히,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하던 뉴욕 맨해튼 정신병원에서의 경험은 의사로서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실내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정원을 훨씬 초과해 수용된 버려진 사람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고 고뇌의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흡사 생지옥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날 밤늦게 나는 일기에 ‘정신병원의 악몽’이라고 적었다. 그 표현으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치료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로스는 약물 요법에 앞서 대화와 위로로 접근을 시작하고, 이러한 시도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절망적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94%를 퇴원시켜, 병원 밖에서 자립하도록 한 것이다.
환자의 얘기를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친해진 후 해결책을 찾는 그만의 치료법은, 자연스레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죽어가는 환자가 출연해 질의, 응답을 이어가는 방식의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세미나는, 저자를 유명하게도 했지만 비난을 듣게도 했다. 환자를 이용한다는 비난이 있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실감하고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점차 죽어가는 환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죽음과 죽어감’ 세미나는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유일한 자서전인 ‘생의 수레바퀴’는,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한다. 오래전에,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그의 책 ‘사후생(死後生)’을 접하고 의사로서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바랐던 기대가 흔들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죽음을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과 환자를 의술에 앞서 사랑과 자비로 품으려는 생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폴란드에서의 국제평화봉사단원 시절. 죽어가는 아이의 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번갈아 안으면서 밤새도록 걸어 시내의 큰 병원을 찾고,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에게 거친 항의로 맞서 끝내 아이를 살려낸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 아이는 폴란드 여인의 열세 명의 아이 중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이였던 것이다. 이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그 폴란드 여자가, 남편과 열두 명의 아이를 잃은 죽음의 수용소인 마이다네크를 찾는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수용소 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자문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막사로 다가갔다. “확실하게 찾아올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은 어떻게, 특히 어머니와 아이들은 어떤 심경으로 마지막 날들을 살아갔을까?”
건물 안에는 5단으로 된 목제의 비좁은 침상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벽에는 이름과 이니셜, 여러 가지 그림이 새겨 있었다.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까? 돌조각? 손톱?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저기에 똑같은 이미지가 반복해 그려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비였다. 보는 곳마다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와 나비. 저자는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나비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깨닫는다. 수용소 내의 포로들은 죽음 직전의 환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사후 세계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 다가갈수록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제한된 시간이 갖는 힘일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들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8월 24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어릴 적에 본 과수원 아저씨의 죽음처럼, 밖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의 마지막은 그의 두 자녀가 관 앞으로 나와 하얀 상자를 열어 커다란 호랑나비를 날리고, 동시에 조문객들도 일제히 나비를 날아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장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어가는 환자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도 따뜻한 포옹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긴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죽음은 삶에서 가장 멋진 경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죽음은 이 삶에서 고통도 번뇌도 없는 다른 존재로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1969년 인간의 죽음(On Death and Dying)을 출판해 죽음의 개념과 말기 환자의 돌봄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저자는, 당시 터부시 됐던 죽음을 공론화하면서 죽음학(Thanatology)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에서,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이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 죽음과 상실을 수용할 때, 처음에 부정(Denial)으로 시작해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등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은 아니나, 수용 단계까지 이르게 되면 대체로 평안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