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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지쿠 Oct 17. 2023

겨울에도 꽃은 핀다.


개학을 맞이한 조금은 추운 1월 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나눈 후 운동장으로 나간다.

사랑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놀이를 어김없이 시작한다.

슛~~ 우리 반 준열이는 미래 축구 선수가 꿈이라며, 손흥민의 부상 때 착용하였던 마스크까지 제작하고 그것을 쓴 후 놀이를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 아이는 어쩌면 저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행동으로 옮길까" 너무 대견하다. 동시에 나를 되돌아본다.

그렇게 한참 놀이하다 축구에 흥미 없는 여자 친구들은 '사랑반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시작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처음 술래는 선생님이 했으면 하는 모양이다. 난 모르는 척 "선생님이 너무~술래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라고 묻고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한다.

자~준비됐니? 네~

"사랑반 꽃이 피었습니다"

왜 무궁화꽃이 아니냐고? 그렇다. 우리 반은 사랑반이기도 하고, 모두모두 사랑스러운 꽃과 같은 친구들이니 우리 반의 놀이 규칙을 바꿨다. 익숙한 "무궁화"란 말이 술래의 입에서 실수로 나오기라도 하면, 모두 득달같이 달라붙어 "왜 사랑반 꽃이 아니야"라고 따지는 어린이들. 놀이에 진심인 우리 반이다.

그때 술래를 피해 도망가던 중 아린이가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장미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유치원의 교화가 장미이기 때문에 외부 울타리에 있는 장미 덩굴을 보고 말한 것이었다.

모두들 그곳을 쳐다보았지만 마른 줄기 덩굴만 보일뿐 장미꽃은 보이지 않는다.

"장미꽃 없잖아~어디 있어?" 한 친구가 말했다.

"저기 있잖아~"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지금, 장미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린이가 가시 돋은 장미 줄기를 보고 말한 것이라 직감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물었다.

"아린아~어디에 장미꽃이 있지?"

역시! 아린이는 장미 줄기를 가리킨다.

아린이는 추운 겨울에도 굳건히 장미의 고유의 특성을 잃지 않고 가시 돋아있는 줄기 속에서 장미를 본 것이다.

"아하!! 여름을 준비하는 장미꽃을 보았구나!"

다른 친구들은 의문을 품는다.

"어디요? "

"..."

"장미 꽃잎은 보이지 않지만, 겨울 동안 이 줄기 속에 예쁘게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단다"

하지만 장미꽃이 눈에 보이지 않아 흥미를 잃은 다른 아이들은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

아린이는 그렇게 한참을 물끄미 장미 줄기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찬 바람에 잎이 모두 떨어져 마르고 거친 줄기만 있는 나무를 보며 명명하기 시작한다. "선생님~저건 은행나무, 저건 감나무..."

나는 그 순간을 눈에, 그리고 기억 저장고에 깊이 담는다.

같은 것을 보고도 누구는 현상만 보고, 다른 누구는 본질을 본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물질의 고유한 특성과 품은 가능성. 잠재력을 보아주는 아린이의 따뜻하고도 깊은 관찰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한번 깊은 울림을 준다.

허투루 보지 않고 보다 세심히 관찰하는 것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보아주는 것

품은 가능성을 바탕으로 미래 아이를 만나는 것

그렇게 '사랑반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나에게 뜨거운 여름의 태양 속에서도 화려하게 만개할 미래의 너희를 만나게 했다. 그 화려하고도 당당한 기개를 뽐낼 여름 장미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너희와 함께 놀이를 하며 성장한다.

겨울에도 장미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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