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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지쿠 Oct 17. 2023

씨앗 하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라는 씨앗

유치원에서는 봄과 가을이면 그에 맞는 텃밭활동이 한창이다.  특히 올해는 초봄에 심었던 방울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등 각종 작물들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오이로 마사지를 하고 깨끗이 씻어 점심때 칼로 쓱쓱 썬 후 추가 반찬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농약을 치지 않아서 깨끗하다는 것을 강조했더니 아이들은 틈만 나면 텃밭의 토마토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우리 반은 식물 기르기에 열성과 진심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교사인 나는 그간 텃밭활동에 큰 흥미가 없었다. 다만 아이들에게 씨를 뿌리고 자라는 그 과정을 교육하기 위해 항상 힘주어 연기하곤 했다. "씨씨씨를 뿌리고~또또~물을 주었죠~"신나게 동요를 부르고 과장된 액션을 하면서 말이다. 식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도통 알 길이 없어 아이들과 컴퓨터로 수시로 정보를 검색한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책임감 있게 끝까지 기르는 태도를 길러주고자 매일 아침 바깥텃밭으로 향했다. 이렇게 식물에 대해 알아보고 돌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하루는 한 아이가 큰일이 생긴 것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선생님~잎에 물을 줬더니 식물이 꺾여버렸어요. " 그러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 식물아 미안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은 너도 나도 실수니깐 괜찮다. 앞으로 조심하면 된다며 서로를 감싸주고 달래주는 모습들... 나는 친구들의 위로 말을 도돌이처럼 되받아 말해줬다. "실수니깐 괜찮아... 식물도 네 마음을 알아줄 거야."이렇듯 식물을 돌보듯 서로를 돌보는 모습들을 보며 텃밭활동은 성공적이라고 내심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모든 열매들을 수확한 후의 텃밭 모습은 황량한 사막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휑해져 버린 텃밭을 비워 두기에는 뭔가 일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 같은 느낌.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 가을 무를 심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리도 드디어 무씨 앗을 심는 날!

그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일을 하듯 "구멍 하나에 씨앗 세 개"를 외쳤다.

모든 반이 순차적으로 심어야 했기에 여유가 없었던 터라 나 또한 준비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자나도 여태껏 싹을 틔우지 못하는 무씨 앗을 보면 말이다.

요즘 아이들과 나는 무 씨앗을 심은 후 텃밭을 바라보며 특별할 말을 나누지 못한다. 특히 무성히 자라고 있는 다른 반 무싹들을 보면 더 말문이 막힌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싹 틔우지 않는 텃밭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진다.

내가 조금 더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고 심는 방법 등을 철저히 해야 했을까...?좀 더 돌보아야 했을까...?

다시 한번 되짚는다. 매 순간 정성이 필요하구나. 식물에게... 그리고 식물 같은 너희에게도 사랑과 정성 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작은 씨앗은 우리에게 크고 많은 것들을 준다.

가장 작은 아이들은 가장 많은 잠재력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돌보는 것은 많은 시간과 정성과 열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간절함까지도.

무 씨앗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정성을 들이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잘 성장하기 위한 과정에 말이다. 다가올 "고진감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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