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뚠뚠 Sep 16. 2024

내가 사랑하는 태국

태국에서 먹고 놀고 일하기 그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기

요새 디즈니플러스에서 하는 'My name is 가브리엘' 예능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김태호 PD 프로그램으로 출연진들이 해외에서 타인의 삶을 체험하는 내용인데 개그맨 박명수 씨가 태국 치앙마이에서 쏨땀을 파는 편이 있다. 보면서 따듯하고 정겨웠던 태국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태국에서 4년 가까이 살았다.

한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유학도 갔다 오지 않은 내게 첫 장기 해외생활이었다.

보통 글쎄 첫 해외 생활은 미국, 호주, 영국 등의 영어 문화권이 아닐까? 그런데 영어가 생각보다 잘 통하지 않는 방콕에서 손짓 발짓과 유치원 수준의 태국어로 지냈던 내 태국 생활은 다사다난했고 참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만 냉장고를 채우고, 집을 채우는 일. 혼자서 처음 본 장보기였다.

처음 계약한 집은 방콕 센트럴에 위치한 월세 80만 원 정도의 작은 침실과 거실이 있는 집이었는데, 방콕에서는 비싼 편에 속하는 집이었다. 노을이 예쁘게 지는 루프탑 수영장과 최신식 운동기기가 있는 헬스장이 있는 콘도였는데, 1년 계약이 반 정도 끝나갈 때 즈음 집주인 에이전트의 사기행각을 알게 되고 월세 2배 정도가 되었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집주인과 내 계약서를 두고 비교해 보니 양 쪽으로 서로 다른 계약서를 써서 서명을 받아두고 중간에서 보증금을 먹고 튀었던 거였다. 사기꾼을 신고하려고 했으나 알고 보니 이미 수십억 대의 사기에 얽혀있는 사람이었고, 내 보증금은 너무나 소액이었다. 어쩐지 이 집이 시세에 비해 싸게 올라왔다 싶었었는데, 그래도 일 년 동안 싸게 잘 살았다라고 넘기기로 했다. (넘겨야 했다)

노을 지는 모습이 예뻤던 첫 콘도의 루프탑 수영장

장기 렌트 계약을 할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여러 집들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나는 매 해 집을 옮겼었는데, 그중에는 벌레의 이유도 컸다. 콘도는 바퀴벌레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 거대한 바퀴벌레들은 대체 어디서 이리 자주 나오는지... 본가에 살 때는 작은 실거미만 봐도 울면서 아빠를 불렀는데, 여기서는 내가 온전히 집의 책임자였다. 지금 죽이던가, 아니면 같이 살던가. 울면서 바퀴벌레 약을 뿌리고 일층 로비에 달려 내려간 적도 있었고 (내려가면 24/7 시큐리티가 있었다) 바퀴벌레와 같이 그냥 나도 콱 사라져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옮겨갔던 새로운 집은 친하게 지냈던 회사 사람들이 살고 있던 콘도였다. 마침 코로나가 터지고 방콕도 오피스들이 폐쇄되고 통금이 생기는 등 여러 모로 봉쇄되었었는데,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기를 즐겁게 해 준 친구들이었다. 평일에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면 모여 김밥도 싸 먹고 퇴근하고 다시 모여 치즈케이크도 구워 먹고 티라미수도 만들어먹고 주말에 또 만나서 그래도 그 와중에 폐쇄되지 않고 문이 열린 공원을 몇 바퀴고 돌았다.


내일은 또 뭘 해 먹을까, 무슨 운동을 할까, 줄넘기를 가지고 나올까, 이따 집에 가면서 장 봐서 갈까, 우리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태국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젖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적응은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결론이 필요한 내일의 이야기들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먼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같이 수육을 삶고 김밥을 말던 언니는 이제 언니와 똑 닮은 6개월 아기를 둔 엄마가 됐다.

거의 매일 출근했던 동네 공원. 호수에는 큰 모니터 리자드가 살았다.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지만, 태국은 놀러 다니기에도 최적의 나라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사방팔방으로 가까운 휴양 도시들이 많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고 물가는 저렴한 나라. 그래서 한국의 친구들도 자주 놀러 왔었고, 그 덕에 나도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보곤 했다. 태국의 시고 달고 상큼한 다양한 컬러의 망고들, 크리미 하고 부드러운 밤 같은 두리안, 달달하고 상큼한 망고스틴을 원 없이 먹었고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태국 음식들에 푹 빠져서 6개월간 6 킬로그램 정도가 늘었었다. 그렇게 (일하고,) 놀고, 먹다가 한국에 오랜만에 갔더니 몸이 왜 이렇게 부었냐며 엄마가 걱정을 했는데... 엄마 이거 살이야... 엄마는 보는 친척들마다 얘가 갑자기 많이 부었다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친구들과 놀러다니던 휴양지들

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롭다. 외지인들을 향한 차별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듯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쨍쨍한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더운 날, 그늘에 앉아서 시원한 수박 주스를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다 보면, 그들의 '싸바이 싸바이‘ 마인드가 조금 와닿는다. '행복하게, 여유 있게'를 뜻하는 태국어인데 인생에서 큰 것을 탐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나누면서 사는 그들의 모습과 너무 일치하다.


박명수 씨 편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하루치 쏨땀을 다 팔지 못하고 겨우 만원도 안 되는 돈만 벌어서 집에 돌아온 '가장'에게 "괜찮아~ 내일 팔면 되지. 그래도 나누고 사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말하는 젊은 아내가 있다. 사실 '방송사에서 이들이 절대 손해보지 않을 정도로 돈을 꽤 많이 줄텐데. 이미 받은 돈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라는 현실에 절여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을 겪어본 나로서는 저 말이 일회성의 방송용 멘트가 아닌 정말 태국인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욕심이 많아 해보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나로서는, 나눔에 행복해하고 가진 것에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은 늘 어렵다.


왠지 오늘은 방콕이 그립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집으로 퇴근하고 싶다. 그리고 가는 길에 또 바퀴벌레떼를 마주치고 아 이곳을 뜨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하하

방콕 근교로 친구들과 놀러갔을 때 사진이다. 사실 이런 사진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오랫만에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찾았다. 너무 즐겁고 평화로워보여!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에서 마음의 여유를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