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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거닐다] No.2

2.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늙어감과 알츠하이머 그리고 감동

by 오미경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의 짧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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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부터 어딘가 슬픔이 묻어 나오죠?

맞아요. 슬픈 내용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니까요.

늙어가는 것, 나이 드는 것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젊을 것이라 생각하고, 늙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죠.

죽음도, 이별도, 늙어감도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 알츠하이머 즉,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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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읽고서 치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들은 자신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자식도 잊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으며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을 돌봐줘야 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봤을까요? 아닐 겁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불행한 일은 내겐 안 일어나겠지"하고 넘깁니다.


그렇지만 고령화 시대에 또 조기 치매 발병률도 높아진 현대에서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는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일 기억이 사라지는 치매 환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바로 이별의 날입니다. 내가 알던 것들, 내가 인지하고. 느끼고 행동하던 것들, 나의 소중한 것들과 강제로 이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알츠하이머입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에는 할아버지와 노아라는 손자가 등장해요. 소설 속 배경은 바로 할아버지의 머릿속입니다. 그 안에서 할아버지의 기억의 공간은 하루가 지나면 작아지고 줄어들고, 차곡차곡 쌓아 둔 추억들이 바람에 휩쓸려 종이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사람이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의 진행 과정을 이렇게 이미지로 표현하니 더 와 닿았어요.


손자를 정말 좋아하여 남들보다 두배 더 좋아한다는 의미로 늘 "노아노아야"라고 이름을 두 번 부르던 할아버지와 노아의 대화는 슬펐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노아는 계속해서 질문해요.


"할아버지. 저기 날아가는 저건 뭐예요?"
"나의 기억들이란다. "


"할아버지. 여긴 어디죠?"
"내 기억 속이란다. 하루가 지나니 좀 더 작아졌구나."


알츠하이머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내가 만약 저렇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슬펐지요. 혹자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해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잃기 시작하여 점차 유아기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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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우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자주 울곤 하지만, 활자로 된 곳에서 눈물을 흘리기엔 상상력이 부족한가 했지요. 그런데 이 책을 보고선 울었습니다. 기억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 그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지만 결국은 자연의 섭리 앞에 질 수밖에 없는 그런 슬픈 싸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아 노아야. 나는 너의 기억을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를 만큼 사랑하는 손자를 두고 눈 앞에 두고도 알아 보지 못하게 될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그 심정을 처참히 짓밟고 계속해서 진행되는 뇌 세포들의 파괴가 얼마나 잔인한가요.


최근 두 권의 책을 통해 치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정말 인간에게 가혹한 병이란 걸 알게 됐어요.

세상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기에 치매 또한 남의 일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이 슬픔과 감동을 주는 작품을 통해 나는 어떤 기억을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지를요.


여러분에게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꼭 잊지 않고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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