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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전남 Oct 04. 2023

질문하는 식탁, 생각하는 저녁

핫도그 닮은 부들, 부들부드르르...

아빠: "해뜨기 전에 쪼로록 기나가, 하루 죙일 싸돌아 댕기다가, 지 배때기 고프면 들어와가 밥만 처묵고, 야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뭐하노?"
엄마: "지도 모르겠십니다. 지도 야 때문에 아주 미치겠십니다"
아빠: "동민! 니 솔직히 얘기해. 니 오늘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뭐했노?
아들: "학교 다녀왔는데예..."


지금은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 여러 코너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즐긴 코너는 '대화가 필요해'였다. 아빠(김대희)와 엄마(신봉선), 아들(장동민)의 묵직한 저녁 식사 시간을 다룬 상황극인데, 특별한 개인기나 유행어도 없는 어찌 보면 지독히도 평범한 우리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화가 필요해'는 당대 가장 인기 있어야 한다는 개그콘서트 '엔딩 코너'를 은근히 꽤 오래 맡아냈다.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일 테다. 일터에 나가 돈 벌어오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장의 역할'이었던 시절. 향수라고 하기에는 뭐 한 복잡 다단한 감정이다. 그 시절 아버지는 꼭 그렇게 무뚝뚝해야만 했을까. 그 시절 무겁기만 한 아버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그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엄마'였다. 세상에 나온 환브로가 처음으로 의미를 담아 토해낸 단어는 ‘엄마'였다. 억울한 또는 서운한 아빠는 애써 '음성학'을 끄집어냈다. 구강구조의 특성에 따라 'ㅁ'이 'ㅃ'보다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에 '엄마'가 '아빠'보다 앞선다는 이론이렸다. 하지만 이후 ’아빠'라는 발음을 성공적으로 뱉어낸 이후에도, 꼬마들은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를 몇 곱절은 더 많이 사용했다. 음성학으로 '퉁'치려는 아빠의 항변이 금세 궁색해지고 말더라.


돌이켜 보면 해답은 당연했다. 아침 일찍 회사로 향한 아빠는 해가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환브로 생각뿐이었지만, 이런 짝사랑도 또 없었다. 종일 엄마와 지지고 볶는 환브로에게 아빠는 당장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뒤에도, 어린이집에서 작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아빠와 환브로의 관계는 그저 일방적이었다. 거울 속 비친 아빠는 그렇게 저 옛날 '가장의 역할'에 충실한 무뚝뚝한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 "오늘 학교에서 재미난 일은 뭐 없었어?"
지환: "당연히 있었지. 점심 먹고 다 같이 산책을 갔거든.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부들을 발견했어"
아빠: "아, 그 핫도그 닮은 부들?  ㅋㅋㅋ~"
지환: "그렇네. 진짜 핫도그네.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ㅎㅎㅎ"

   

대화의 시작은 다시 저녁 식탁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던 환브로는 차츰 아빠와 대화에 익숙해져 갔다. 정신없이 신나는 하루를 보낸 환브로에게는 천천히 일상을 곱씹을 기회의 시간이었다. '맛있다',  '재밌다', '슬프다',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전부였던 환브로의 짧은 답변에도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답하기 위해 관찰을 시작했고, 기억하려 노력하는,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어쩜 그리도 귀여운지... 갑작스러운 아빠의 '대화 러시'가 어색했던 엄마도 어느새 신이 나 대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짝사랑이었다. 질문은 언제나 아빠의 몫, 환브로는 질문에 답하기 급급했을 뿐이었다. 사실

무언가 질문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특히 먼저 질문한다는 건 꼬마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다. 질문은 대화를 시작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그렇게 힘든 일이 따로 없을 테다.


언젠가 먼저 질문을 해보라는 아빠의 요구에 지환이는 울음까지 터트렸다. 마땅한 질문 없이 이어진 기다림의 시간. 훌쩍이는 소리마저 사라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구원하고 나선 건 역시 엄마였다. 속닥속닥 한 마디 던져주자, 금세 울상인 꼬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 오늘 점심밥 맛있었어요?  반찬은 뭐였어요?"  거의 일주일을 똑같은 질문에 답해야 했지만, 그래서 더 잊지 못할 추억의 질문이다. 덕분에 점심 메뉴를 얼마나 고민했던가. 지루한 회사원의 평범한 점심시간마저 어느새  풍성해져 있더라. 행복의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려환이는 '예를 들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렇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대화의 상대가 이해하기 좋기 때문이란다. 저녁 식탁 대화가 만들어 낸 려환이만의 대화 기술이 아닐까. 짧게 답할 때마다 되돌아온 가족의 추가 질문에 어떻게든 대응하려 한 꼬꼬마의 노력이 대견하다. 기술을 넘어 본질마저 꿰뚫을 듯한 꼬꼬마의 대화는 지금도 무럭무럭이다.


중학생이 돼 기숙사 생활을 하는 지환이는 밤마다 전화를 걸어 수다를 쏟아낸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 분풀이라도 하는 걸까. 단순한 습관이라기에는 목소리가 에너지가 넘친다. 행복이다. 가족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지환이를 바라보는 룸메이트는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고 했다더라. 그러고는 쉽게 잠 못 이루는 친구들의 대화가 또 이어진다. 가족과 대화에서도 친구와 대화에서도 이제 지환이는 질문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게 행복을 공유한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환브로 친구들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단막극이 아닌 연속극에서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질문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아빠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대화는 단지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화는 나와 너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서로가 이제 아이들에게 질문하자. 또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렇게 행복을 대화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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