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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학원 대신 중국도 간다

이번에는 중국도 좀 달라졌겠지?

by 건전남

2009년 어느 여름날, 여자친구 W의 초대를 받아 중국 칭다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에서 3년 가까이 일해 온 W는 꽤 자신 있게 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러내면서 중국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이다. 기대를 품고 도착한 나의 첫 중국, 공항을 나서자 앳된 얼굴의 W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내 후텁지근한 대륙의 열풍이 시샘하듯 불어닥쳤고,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 세웠다. 중국생활에 나름 적응한 W 덕분에, 번역기 없는 시절도 택시기사와 소통에 걱정이 없었다. 널찍한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이정표와 다른 작은 도로에 진입했을 때도, W는 의연함 그 자체였다. 기사와 몇 마디 나눈 W는 주유소에 잠깐 들른다고 했다며, 살짝 긴장한 나를 안심시켰다.


물론 주유소에서 30분 이상을 머물게 될 줄은 W도 몰랐다. 칭다오에서 가장 저렴한 주유소가 공항 인근에 있어 대다수 택시들이 이 주유소를 찾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기름을 넣으려 길게 늘어선 택시들이 거짓말 살짝 보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기름 아깝다며 시동을 끈 택시기사는 택시에서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직접 손으로 밀어 택시를 조금씩 이동시키는 알뜰함과 엿 바꿔먹은 친절함이라니.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인가. 올림픽 이전에는 대체 어떠했다는 것인가. 나는 누군가, 또 여기는 어디인가. 당장이라도 공항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도 같았지만, 혼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야속했다. 그렇게 나의 첫 중국은 택시 안팎에서 찍은 단 두 장의 사진과 운명적으로 아내가 된 W를 남기고 조용히 마무리됐다.



(회사 업무 출장을 빼고) 다시 중국을 찾은 건 2016년 (또) 여름이다. 무리뉴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펩의 맨체스터시티가 베이징에서 프리시즌 경기를 치른다는 소식에 흥분한 내게 아내 W가 선물을 내밀었다. 경기 관람을 포함한 베이징 여행 패키지 상품을 덥석 예약한 거다.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은 아닌 터라 아쉬웠지만, 중국에 대한 기분 좋은 추억을 혼자라도 다시 느끼고 싶었나 보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중국어는 '안녕', '고마워' 정도밖에 몰랐지만, 패키지여행이라고 하니 걱정이 없었다. 기름 넣는다고 30분 넘게 땡볕에 세워두지는 않을 것 아닌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과 수다도 분명 신날 테다.


그렇게 다시 만난 중국, 여전히 중국의 여름은 더웠다. 공기 질은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축구만 보면 되는데,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그게 또 안 되더라.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경기 관람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아마도) 맨유 앰버서더로 베이징에 온 박지성과 대화를 나눌 기회도 당첨됐지만, 옆에서 낙담하고 있는 꼬마에게 흔쾌히 양보했다. 난 축구를 보러 왔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젠장) 결국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며칠 전 베이징에 폭우가 쏟아졌는데, 배수시설이 안 좋은 경기장 탓에 잔디가 엉망이라는 거다. 무리뉴와 펩은 선수 부상 우려를 이유로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그래, 역시 선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명장들이다. (고맙다, 제길.) 축구 경기 관람 일정은 사라졌고, 대신 새로운 패키지여행 코스가 추가됐다. 발마사지는 시원했지만, 추가 옵션에 대한 바가지요금에 열이 올랐다. 근교 만리장성도 맛보기 관광이 가능했지만, 흥이 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중국은 '앙꼬 없는 단팥빵', '축구 없는 축구 여행'으로 마무리됐다. 7년 만에 찾은 중국은 그렇게 또 다른 답답함이었다.



코로나19를 겪고, 다시 9년이 흘렀다. 생때같은 두 아이와 (또)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 고민하다 중국이 떠올랐다. (일단은) 한시적으로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졌고, 결정적으로 예산에 여유가 많지 않았다. 양꼬치 좋아하는 아이들 입맛도 한몫 거들었고, W 여사의 중국어 실력은 녹슬었을 테지만 번역기가 있다. 은근 세계 곳곳을 여행한 아이들이 중국을 가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된다는 데 공감이 갔다. 이번에도 누군가 속삭인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중국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속는 셈 솔깃했다.


거대한 나라인 중국을 꼼꼼히 다 둘러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애를 써보기로 한다. 단, 아이들이 만족해야 가능한 일이니, 아이들이 중국 여행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큼지막한 여행 스폿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베이징과 시안,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중국의 두 수도로 향해보자. 나의 세 번째 중국. 아! 이번에는 여름이 아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먼지바람이 불기도 전인 2월 중순. 거창한 글을 쓰려는 건 아니고, 그저 기록을 남겨볼까 싶다. 마무리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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