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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지 마! 나 만리장성 간다!

by 건전남

비행기 예약 실수로 고북수진을 날려먹었지만, 그렇다고 베이징까지 와서 만리장성을 다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저 많은 만리장성 가운데 어디를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보통은 빠다링 장청(팔달령 장성)을 간다고 하는데, 보통 많이 간다고 하니 또 꺼려진다. 아니나 다를까 홍보 사진에는 흔히 떠올리는 멋들어진 풍광을 자랑했지만, 실제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은 인산인해! 만리장성 위에서 사람에 떠밀려 다녀야만 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비수기라 좀 덜할 거라는 설명도 있었지만, 괜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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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여유롭게 만리장성을 감상할 곳은 없을까. 빠다링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풍광이 보장되면 좋겠다. 아직은 그래도 아이들이 함께 하고, 아빠의 체력은 안타까운 수준이니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도 아예 걷지 않을 수는 없으니 경사가 많이 가파르지 않은 코스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푸른 기운이 없는 2월 중하순에 적합한 곳이면 금상첨화다.


폭풍 검색의 결론은 무티엔위 장청(모전욕 장성)이었다. 베이징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투어 상품을 이용해야 했다. 약속 장소에 절대 늦지 말라는 신신당부에, 일찍부터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시안과 비교해 많이 쌀쌀한 베이징의 아침에 놀랐고, 아침 식사 겸 주문한 과일 주스 사이즈에서 다시 한번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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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가 제법 올라왔는데도, 베이징보다 더 북쪽으로 달려온 터라 추위가 매섭다. 추위 탓에 비수기일까, 다행히 기대한 대로 관광객은 손에 꼽을 만하다. 그래도 춥다. 많이 춥다. 블라디보스토크 추위가 떠올랐다. "모자를 안 쓰면 죽을 수 있다" 냉큼 노점에서 털모자 두 개 집어 들었다.


케이블카를 타러 조금 걷다 보니 벌써 숨이 찬다. 평소 운동을 좀 할 걸 하는 후회보다는, 역시 케이블카가 있는 장성을 검색해 오기를 잘했다는 안도가 앞선다. 서서히 산 정상부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그동안 이용한 수많은 케이블카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테이블마운틴 케이블카는 빙글빙글 돈다. 베트남 사파 판시판 케이블카는 길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케이블카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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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티엔위 장청 케이블카는 편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광객을 위해 딱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부족한 경우도 큰 도움이 된다. 무분별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지만,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려우니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다.


정상부에 오르니 아 멋지다. 겨울이라 초록초록한 컬러감은 없지만 오히려 성벽의 의미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만리장성은 사실 10,000리를 넘는 길이를 지녔고,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냥 장청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탄을 날렸다. 북방민족을 막아내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오랑캐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옳지 않다고도 덧붙여줬다. 고려에도 천리장성이 있으니 통일되면 가자고도 했는데, 녀석들은 집중하지 않는다. 대충 다 알고 있다나.



하긴 나도 대충 아는 건데, 이상하게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면 설명충이 된다는 말이지. 다음에는 달달 외워야 하는 설명 대신, 달달한 사탕이라도 물려줘야 하겠다. 그런 다음 달달 외울 수 있도록 유도해 볼까나. 아니다, 유도보다는 태권도를 해야 할까. 아놔, 완만한 성벽 위는 괜찮았는데, 막판 계단 지옥에 심리적 붕괴가 나타난다. 무릎이 안 좋은 내게 계단은 최대 난관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간 정상, 시원한 맥주가 너무나도 반갑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산 하단부로 내려가 장청의 반대쪽으로 오르는 리프트에 오른다. 안전장치가 없느니 무섭다느니 이런 후기가 가득했는데, 그냥 스키장 리프트다. 담담히 올라 장청의 반대쪽을 만끽한다. 침엽수가 있어 초록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케이블카 코스보다 확실히 스케일이 약하다. 그래도 관광객이 없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이제 하산할 시간. 이번에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다. 알파인코스터와 루지의 혼합형이랄까.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안 난다. 그래도 만리장성 투어 마무리로는 더할 나위 없는 이벤트가 아닐까. 누군가 만리장성을 여행하려 한다면, 고민 없이 2월의 무티엔위 장청을 추천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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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또 간다고 해도, 제발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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