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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은 자금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by 건전남


앞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베이징을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었다. 무더위 속에 헉헉거리며 끈적끈적한 인파에 떠밀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공기질도 정말 최악이었다. 하지만 난 다시 베이징에 가야만 했다. 정확히는 아이들을 위해 딱 한 번만 더 가자는 생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남들 그렇게 많이 간다는 미국도 아이들은 하와이와 마이애미만 다녀왔다. 스페인도 카나리아, 바르셀로나, 마요르카가 전부다. 독일도 빌링 엔 슈베닝엔 정도인가.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도 강릉, 그것도 강릉의 변두리에 살고 있네. 다분히 내 개인적 취향일 텐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일단 경험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2월의 베이징은 덥지 않았다. 모래바람은 물론 자동차 매연도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불편하지 불쾌하지 않았다. 베이징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보다 훨씬 쾌적했다. 유럽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다. 올림픽 2번 만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 건지. 하긴 강릉도 올림픽(때문에 생긴 기찻길) 덕분에 변화가 좀 있기는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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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로 변한 중국은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걸까. 정답을 찾아낼 정도로 긴 여행은 아니었고, 우리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한걸음 치고 나간 것처럼, 중국도 스마트폰이 크게 한몫하지 않았나 추정할 뿐이다. 현금이 필요 없는 스마트페이 세상은 말로만 듣던 것 이상이다. 노점상들도 현금을 받지 않는다.


여기에 반갑지 않은 스마트한 통제도 더해진다. 온 사방에 설치된 수많은 CCTV가 24시간 중국 대륙을 지켜보고 있다. 적정한 수준의 통제라고 한다. 중국 인민들에게는 불편하고 갑갑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관광객에게는 더없이 반가울 수 있다.


이탈리아 피사에서 주차한 렌터카가 통째로 털렸을 때 이탈리아 경찰이 한 말이 기억난다. "어차피 못 잡아요. 시간 끌지 말고 여기에 잃어버린 물건 적고 보험금 청구하세요." 엄마 아빠도 크게 당황한 사건을 바라본 어린 꼬마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아이들은 베이징 도심 CCTV를 바라보며, "이탈리아보다 좋네"라고 읊조렸다.


스마트한 세상은 시련도 안겨줬다. 예전 생각으로 자금성 관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예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사전 예약이 필수로 바뀌었다. 게다가 관람객 수 제한까지 생겼다. 놀랍다. 베이징에서 꼭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랜드마크 관광을 베이징까지 와서 날려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귀국 전날 천안문 광장 예약에는 성공했다는 것. 천안문 가서 마오쩌둥 초상화 보고, 자금성 입구에서 사진 한 장 박으면, 어느 정도 자금성을 다녀간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항공권 예매 실수에 이어 자금성 예약 실수라니, 베이징은 달라졌지만, 베이징 악몽은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공항 출국심사만큼 엄격한 검사 이후 천안문 광장에 들어섰다. 한참 줄을 서 들어간 곳에 펼쳐진 널찍한 공간에 아이들이 적잖이 당황한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광화문 광장'과 비슷하다는 설명을 들려줬다. 여러 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이야기에 더해, 1989년 6월의 슬픈 역사를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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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알고 있고 기억하는 천안문 항쟁이, 정작 중국에서는 언급조차 금기시되고, 검색조차 어렵다는 이야기에 또 한 번 놀란다. 천안문 항쟁 이외 반중국적인 이야기도 통제된다고 하니, 아이들은 "와, 다크투어였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외국 SNS나 포털 접속이 어려운 것도 이런 식의 통제 때문이라고 하니, 낯빛이 더 어두워진다.


적정하다는 말처럼 좋은 말도 없다. 부족하지도 차고 넘치지도 않는 이상적인 상태, 하지만 누구나 다를 수밖에 없는 기준을 생각하면 그토록 어려운 말도 없다. 게다가 용케 대다수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적정선을 찾았다고 해도, 그 적정선을 유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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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중요한 건 극단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 많은 사람을 무력으로 짓밟은 건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라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기준이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이를 억지로 가르치고 통제하려 한다면, 그만큼 답답한 일도 없을 테다. 몰라보게 달라진 베이징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라. 자유가 사라진 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그나저나 자금성 때문에 베이징을 다시 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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