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라도 씹어 삼킬 수 있다면_승연

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by 승연
image.png

수술 전에 우리 집도 나름의 발버둥을 쳤다.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산삼약침도 맞고 항암을 도와주는 환도 도먹고, 또 신점도 봤다. "그날은 절대 수술하지마. 다른 날 골라." 굿이라도 하라는 말은 듣지 않아 다행이었다. 신이라도 불러 기도를 드리는 게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다면 말리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달마다 한의원에 들어가는 돈이 웬만한 소시민의 월급을 넘어가는 상황에 몇 백짜리 굿까지 할 수는 없었다.


병상에 있는 와중에도 집안의 재물이 쑥쑥 빠져나가는 걸 맘 편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우리 부모는 복도 없지. 한줌 재산을 딸래미 치료에 날려버리다니. 그러면서도 이들이 해주겠다는 치료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매일 아침 쓰디쓴 케일 녹즙을 마셨고, 흑마늘 진액을 마시고 구토도 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받아야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이들이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기 전, 다니던 대학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제안했다. 암의 크기를 좀 줄여서 수술을 해보자는 뜻이었다. 급하게 잡았던 수술이 불발되었으니, 신점을 본 무당의 말이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진 걸까. 아무튼 나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수술 후 몸이 버틸 수 있도록 살을 찌우기로 했다.


입원 후 제일 처음 한 것은 방사선을 조사하기 위해 가슴에 '점'을 찍는 거였다. 타투를 하듯 검정 잉크를 피부에 주사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별 다른 안내 없이) 방사선 치료실로 들어가 두 명의 젊은 방사선사 앞에서 브래지어까지 다 벗어야 했다. 환자가 된 상태로 그런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만 21세인 나는 목욕탕이 아닌 곳에서 윗도리를 훌렁 벗어본 적이 없었다.


겨드랑이 제모도 안 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양팔을 올리고, 명치와 주기관지 쯤에 점 2~3개를 찍었다. 테스트로 방사선을 조사하고 나왔더니 엄마가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라고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병원복을 입고 나왔건만, 부끄러운 마음을 전부 숨기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아무리 숨겨도 엄마 앞에서는 들킬 수밖에 없었거나.


젊은 사람들이 암세포 성장이 빠르다고 하니, 또 어찌됐든 젊은 나이다 보니 방사선 조사량을 평균보다 살짝 올렸다. 그렇게 7~8회 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무렵 연하곤란이 찾아왔다. 어느 날 작은 아버지가 사다준 초밥을 먹는데 식도가 싸하고 아픈 느낌이 든 것이다.


그날 이후로 식도가 퉁퉁 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식도를 긁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통증은 점점 거세져서 잠을 자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엄마는 급한대로 키친타올을 돌돌 말아 내 입에 물려주었다. 하지만 키친타올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았고, 퉁퉁 부은 식도는 점점 상태가 심각해졌다.


'방사선 식도염'이였다. 기도와 식도는 붙어 있기 때문에, 기도에 방사선을 쬐면 식도에도 영향이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말을 맞이해 응급실로 향했다. 벌써 며칠 째,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는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신나게 퇴원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온 것이다. 웰컴 투 마이 홈.


결국 구토와 오한이 찾아왔다. 인터넷에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검색하면 나오는 모든 증상이 온몸에 머물렀다. 공용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던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치료 더 안 하면 안 돼?" 뭔가 드라마 대사 같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강철 심장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해야지." 맞다. 그래도 해야 한다.


죽을 자신이 없으면 다가오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후 나는 한 팩에 900 킬로 칼로리짜리 영양분을 정맥을 통해 맞으며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수액과 영양분이 들어가는 혈관이 퉁퉁 부어서 이틀에 한 번, 하루에 한 번, 반나절에 한 번씩 혈관을 다시 잡아야 했다. 밥을 먹지 않으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병원에서의 시간은 지루함의 지옥이었다. 앉아 있을 수도 잠에 들 수도 없어서 이불을 돌돌 말아 끌어안은 채 벽시계만 바라보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살고 싶었나 보다. 일주일이 지나자 이대로면 진짜 수술도 못 받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우유 한 팩을 사달라고 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이를 꼭 깨물고 식도가 찢어지는 통증을 견뎌야 한다면, 차라리 우유 한 팩을 원샷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어느 문을 열고 오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매일 아침 우유 한 팩을 원샷하고 통증으로 굳어서 철제 동상이 된 사람처럼 쭈그려 앉았다. 지옥 같은 시간도 가기는 가서, 2주 뒤에는 다시 남은 치료를 받아도 될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아직 죽을 날이 아니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도 없이 나는 영양제와 일시적으로 이별했다.


*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

이전 06화신 받아 신발 사는 미래_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