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본 걸 또 본다. 주기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손 가는 대로. 박희정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 존 치버의 단편 「헤엄치는 남자」, 전도연의 <무뢰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 등. 최근에는 2000년대 미드 <CSI 라스베이거스> 시리즈를 다시 보고 있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서사와 연출의 밀도가 높다. 무엇보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대부분 범인이 밝혀진다는 점이 맘에 든다.
시즌 3 '작은 살인' 에피소드. 왜소증 커뮤니티 행사장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뜻밖의 인물 케빈으로 밝혀지는데. 그가 살해한 남성은 딸의 약혼자였다. 케빈에게 정상 체격의 딸은 자신의 신체적 열등감을 보상해주는 대상이자 '완벽한 자아'였다. 하지만 딸은 왜소증 남자를 선택했고 케빈은 최종적으로 무너졌다. 겨우 부정한 '나'라는 존재가 다시 나타났다고 여긴 것이다. 수갑을 찬 채 복도를 걸어 나가는 케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반장 그리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슬픈 건,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증오 범죄라는 거야.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했어."
수갑 찬 남자가 화면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모니터를 응시한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일. 그쪽으로는 나도 경험치가 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나다. 그건 정제 설탕보다 몸에 나쁘다.
설탕보다 나쁜 건 나다.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고, 얼마나 증오하는지 증명할 방법은 의외로 많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건 연애다.
반에서 누구와도 섞이지 않는 애. 소문 나쁜 애. 앞머리가 길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애. 이 세계와 불화하며 불온한 짓도 서슴지 않는 애. 이상하게도 그런 애를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멀쩡한 애가 꼭 있다.
K가 그랬다. 자소서에 단 한 줄의 거짓말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사이 좋은 중산층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애. 나는 말수가 적고 주변에 쉽게 동요되지 않는 K의 단단한 세계가 탐났다. 갖고 싶었다. 금이 가게 하고 싶었다.
학부 시절, 우리는 겹치는 필수 과목이 많았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빈자리 중 K의 앞자리를 골라 앉곤 했다. 뒤에서 K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리면 우연을 가장해 따라 일어섰다. 지속적으로 시선을 끌었다. 주술에 걸려라. 내게 걸려 넘어져라 그런 주문을 외우며. 얼마 안가 눈이 마주쳤다. 다음 날에는 농담을 섞었다. 이어 마음이 끓었다. K가 금을 밟고 나의 세계로 왔다.
부모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다정한 시간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어도 만나러 와주었고 같잖은 일로 변덕을 부려도 화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린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둘이 있을 땐 가정 환경과 결핍을 늘어놓으며 K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그의 애정은 예배당처럼 신성했고
십일조(상대적인 애정)를 내지 않아도 구원받는 성역 같았다.
그야말로 감탄이 나오는 성정이었다. 자식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다 너 같을까. 부럽고 속이 뒤틀렸다. 나는 이렇게 최악인데 넌 선량하고 아름답구나. 내 밑바닥을 볼래. 종이컵 속 번데기를 가까이 보는 기분일 거야. 징그러울 거야. 그래도 나를 견딜래. 뒤틀린 질문이 자학으로 이어졌다. K를 두고 성실하게 다른 남자를 만났다. 평범한 연애를 기만하고 K를 밀어냈다. 다시 안 올 것처럼 떠났다가 돌아갔다. 그 지난한 짓을 3년이나 반복했다.
K가 군대로 떠났을 때 우리는 정말 끝장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꼭꼭 숨은 K를 다시 찾아냈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연락을 피하는 K에게 자살 기도 과정이 적힌 편지를 보냈다. 고요하고 무해한 K는 편지 한 통으로 다시, 내가 있는 지옥으로 끌려왔다. 오, 진짜야? 너는 나를 정말 좋아하나 봐. 나는 여전한 K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락을 끊었다.
손을 자주 씻으면 손금이 지워질까, 운명선이 짧아지면 좋겠다.
아무래도 K는 숨바꼭질에 소질이 없었다. 내가 떠나는 게 빨랐을 텐데. 그건 일종의 길티플레저일까, 그런 단어를 붙이기엔 너무 쓰레기 같지 않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마지막까지 참담하게 굴었다. 제대 후 K는 후 먼 곳으로 유학을 갔다. 그렇게 몇 년 연락이 끊겼다. 스무 살에 나를 만난 K는 어느새 스물여섯이 되어 있었다. 6년. 그 긴 시간 동안 내 주위를 맴돌며 엉망이 된 K. 나는 기어코 다시 그를 찾아냈다. 뱀처럼 다가가 지난 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너와 하겠다고 약속했다. 집은 몇 평이 좋을지, 빨래는 누가 할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사는 우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면죄부로 면사포를 쓰겠다는 내 말에 그때 넌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글을 쓰면서 진저리가 난다. 나방이 입에 들어간 기분이다. 너는 또 내 말을 믿었다. 나는 또 너를 기다리지 않았다. 너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나에게서 벗어났으니까. 네가 사라진 걸 보니 신은 역시 네 쪽에 있는 것 같다.
가끔 삶이 지독하게 불행할 때, 나는 안도한다. 청구서를 받은 것 같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자는 기어이 타인의 세계를 붕괴시킨다. 그러니 지금 겪는 고단함은 그 시절부터 이어진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화면 속 복도를 걸어 나가는 수갑 찬 남자는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 제목은 고다 요시이에 만화 <자학의 시>에서 빌려왔다.
* 이미지는 Midjourney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