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까지 내려가는 게 특기_승연

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by 승연

만 21살에 폐암 수술을 받고 2년이 지나 복학, 졸업하고 나니 또 취직하는 게 무서워 대학원 입학. 겁먹은 토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정상인보다 훨씬 적은 폐활량 때문에 구석에 숨어 헐떡이는 게 일상. 정신을 차려보니 청춘의 밑단이 구깃구깃했다.


사실 겁쟁이 DNA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20대 초반의 딸래미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담담할 부모는 없다는 건 인정한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방식으로 날벼락을 해석하고 싶었을 거다. 어쨌든 내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아버지는 가족회의 삼아 모두를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암덩이는 다 떼어났다지만, 앞으로 5년이 고비다. 우리 집에 큰 불이 났는데, 불씨가 아직 안 꺼진 거라고." 이미 나의 불행으로 지칠대로 지친 어머니와 오빠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피로했다. 아버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쟤 이제 시집 가기도 힘들어."라고 판사처럼 나의 미래를 못 박으셨다.


아니 그걸 나도 모르는 건 아닌데 말이지. 진통제 때문에 감각이 없어진 갈비뼈 부근을 살뜰이 씻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말라붙은 지렁이를 얹어 놓은 듯한 나의 등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몸을 더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암덩이만 도려낸 것이 아니라
나의 청춘도 함께 절제한 것이다.


폐 한쪽으로 다시 일상을 찾아야할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어머니와 집 앞 놀이터를 가는 것도 숨이 찼지만, 억지로라도 밖으로 나가야 형벌처럼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동네에서 꽤 오래 산 터라 동네에는 나의 부모님과 알음알음 지내는 분이 많았다. 그분들은 '건강해 보이네.' '잘 좀 먹어야겠다.'라는 식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나와 외출할 때마다 동네 사람을 피했다. 멀리 골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옆길로 가자고 하는 식으로. 아버지는 '병은 많이 알릴수록 좋다.'라는 주의여서, 내가 폐암에 걸린 것을 지인에게 모두 알리는 편이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이들의 위로가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내가 또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했다. 나는 뭐가 어떠냐는 반응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숨겼다.


'그때 있잖아. 내가 완전 말라서 포대자루 같은 환자복 입고 병원 침대에 앉아 있을 때. 너무 오래 자서 더는 누워 있지도 못하고, 근데 밥을 못 먹어서 걸어다닐 힘도 없고. 눕지도 앉지도 못하니까 이불 돌돌 말아서 껴안고 멍하니 앉아 있는 걸, 아빠가 사진으로 찍어서 자기 카톡 프로필 사진을 했잖아. 우리 딸이 아프다고, 기도해달라고, 대화명까지 적어서. 나 그 사진 진짜 싫었어.'


그때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버지 흉을 보는 게 모녀의 일과였다. 어머니도 '어. 그래. 그때 엄마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네 아빠는 자기만 안다.'라고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가고 나는 이제 걸으면서도 말을 할 수 있는(사실 이건 굉장한 스킬이었다!)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점점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소개팅을 받았다. 나만큼 연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데이트를 할 때마다 나는 내 등에 있는 흉터가 신경쓰였다. 폐암에 걸렸다는 건 모를 텐데. 아니, 뭐, 당장 결혼하자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아주 어린 것도 아니고. 나는 속으로 '100일이 지나면 솔직히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카운트를 셌다.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정이 다 들고 나서야 밝힌다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남자는 내 병력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매년 병원에 다니고 있고, 완치 판정까지 몇 년이 남았다는 것도 이해해줬다. 과분하게 감사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남자와 헤어졌는데, 나는 그 남자와 헤어진 이유가 다른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좋았다. 이기적이게도.


하지만 그 후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거나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면, 이런 질문이 쏟아져나왔다.


진짜, 괜찮다고? 집안에 암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몇 명이 힘든 줄 알아? 언제 또 아플지 모르잖아. 감당할 수 있어? 아프면 돈도 못 번다? 아니 돈을 막 물 쓰듯이 쓴다? 아이는 낳을 수 있으려나? 정상인 사람도 임신하면 숨이 찬다는데, 나는? 그래. 낳을 수 있다 치자. 이런 저질 체력으로 키울 수나 있고?


나는 나의 결격사유를 하나둘씩 읊으며 '이번 생은 결혼하기 글렀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데 아버지의 예언이 적중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바닥을 기어다니던 나를 끌어올린 남자가 나타났다.


*이미지는 나노바나나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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