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회복 후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복학했다. 나의 전공은 문예창작과로 소설과 시는 물론, 동화와 방송콘텐츠 등 다양한 수업을 공부했다. 복학하자마자 내가 듣게 된 수업은 방송콘텐츠였다.
당시 교수님은 폐암 환자가 남편의 품에서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다. 다큐의 시각으로, 인간의 죽음을 따라가는 경건한 시선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폐암 환자가 고통에 절규하고 울고, 가족의 품에서 눈을 감고 염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나는 멍하니 감상했다.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이 반에서 내가 어떤 병을 앓고 돌아왔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는 사실 때문에 지독하게 고독했다. TV 속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기에는 내 고독이 더 중요했나 보다.
입고 있는 옷 속에는 천사의 날개가 불타고 남은 듯한 흉터가 있습니다. 양쪽 어깨뼈 아래로 지렁이가 눌러 붙은 모양이지요. 가끔 흉터 부위가 나흘 안 씻은 사람의 피부처럼 가려운데 무서워서 긁지는 못합니다. 손톱 밑에 흉터가 걸려서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거든요. 농담입니다. 그래도 웃지는 마세요.
<무릎팍 도사>부터 시작해서 <유퀴즈>까지 나는 만약 언젠가 내가 유명해진다면, 토크쇼에서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토로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실제로 머릿속에 강호동과 유재석 MC를 앉혀 놓고 어떻게 해야 내 병을 가장 '우아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또 작가답게 그걸 얼마나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그렇게라도 모두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들어야, 내가 받은 날벼락에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어떨 땐 내 병에 누구보다 쿨하게 굴고 싶은데 어떨 땐 평생 나만 아는 비밀이었으면 한다.
폐가 한쪽인 게 어떤 느낌이냐면... 사실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폐는 30%만 남아 있어도 생존이 가능하다.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면 폐활량이 40% 정도만 되어도 일상 생활은 대부분 가능하다. 나처럼 전폐절제술을 받으면 남은 쪽 폐가 사라진 폐의 역할을 홀로 맡게 되면서, 오른쪽 폐가 점점 커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는 내려가고, 허리가 왼쪽으로 슬슬 돌아갔다.
언젠가부터 가족이나 친구가 내 사진을 찍으면 왼쪽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게 보인다. 애써 왼쪽 날개뼈에 힘을 주고 어깨를 들어올려도 딱히 밸런스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단체 사진을 찍는 일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꼭 다같이 사진을 찍어야 할 때는 왼쪽 팔뚝을 슬쩍 들어올리거나 아예 손으로 브이를 만들고 고개를 한껏 꺾어서 똑바로 서는 자세를 피한다.
이런 것들은 너무 자잘하고 요새 말로 표현하면 지극히 '짜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 가볍게 내 상태를 설명할 예가 있다. 아침에 이를 닦을 때 마다 들숨을 마시면 치약의 화한 기운이 오른쪽 폐에만 퍼진다는 것이다. 폐가 양쪽만 있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확실히 폐가 한쪽만 남으니 딱 오른쪽 갈비뼈 안쪽만 시원해진다.
매일 매일 혼자 애쓰는 오른쪽 폐를 칭찬합니다.
짜식, 죽을 때까지 같이 잘 살아 보자고!
아플 때야 생존이 중요했지, 내 병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고, 회사를 다니면서 내 상황을 넌지시 설명해야 하거나 조용히 입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예를 들어 나의 개인 건강검진으로 연차를 쓸 때 괜히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간다고 하는 식.
내 병을 누구한테,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 예비 신부처럼 친분의 정도를 따지는 일은 귀찮기만 하다. 고독하기는 싫으면서 이해받고 싶지도 않은 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