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과 마음의 병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최저시급을 챙긴다. 올해는 지난 해 보다 2.9% 올라 시간당 10,320원. 한 시간 일하면 한 끼는 식당에서 먹을 수 있네, 그런 안도감이 든다. 고1부터 만화방, PC방, 비디오방, 고깃집 알바를 하고 대학 졸업 후 회사를 전전했으니 노동자가 된 지도 이십 년이 넘었다. 정규직 생활을 오래 했어도 최저시급은 늘 나의 관심사다.
학부 시절, 아파트 단지 앞 만화방에서 시급 1800원을 받고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돈도 적었지만 하는 일도 적었다. 만화책을 대여해주고 돈만 받으면 끝. 손님은 주로 아파트 주민이라 대여일이 지나면 집으로 찾아가 초인공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사장은 대부분의 손님에게 관대했으나 아닌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 너머 어딘가 동네에는 보육원이 있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들었다. 사장은 내게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책을 대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왜냐고 묻자 책을 분실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며칠 뒤 나는 책방 문 앞에 서서 쭈뼛대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묻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사장이 말한 블랙리스트 속 아이들이라는 걸.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일본 야구만화 H2를 몇 권 골랐고 나는 아이들이 고른 만화책을 내 이름으로 대여해주었다. 다음에 또 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어줍지 않은 어른 행세가 아닐 수 없다. 집이 망하고 끼니 걱정을 할 때 차라리 보육원에 보내주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집보다는 쾌적할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 뒤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나는 그곳이 정병러들의 보육원처럼 느껴졌다.
일단 드라마에서 보던 폐쇄병동과 달랐다. 약에 취해 베드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넓고 쾌적한 거실이 보였다. 펜션에 온 기분이었다. 데굴데굴 구를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에는 병명 성별 다른 환자가 미치지 않은 얼굴로 색종이를 접거나 TV를 보고 있었고 간호사 둘은 데스크에서 수다를 떨었다.
가장 의아한 건 병원 구조였다. 남자와 여자가 자는 병실만 구분되어 있을 뿐 개방된 곳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확실한 정병 라이선스를 가진 이들인데, 위험하지 않다고? 해치지 않는다고?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주제에 나 해칠 궁리만 하면서 뜬금없이 안위를 걱정하다니 내가 우스웠다.
넌 왜 왔니. 멍청하게 서 있는 내게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여자가 물었다. 귀퉁이가 찢어진 파란 소파에는 여자를 포함해 총 네 명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목을 내밀었다. 저런, 난 알콜이야. 그게 다였다. 여자는 자신을 술이라고 부른 뒤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주저 앉아 색종이와 씨름하던 아저씨가 나도 술, 하고 말을 받았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여자가 검지로 색종이 모퉁이를 꾹꾹 누르며 떠들었다. 소주를 하루에 열 병씩 마시다가 멈추잖아. 그럼 나 빼고 다 움직여. 저기 벽지에 있는 무늬가 송충이가 되고 바닥도 너울너울 대. 이번이 세 번째 입원이라는 여자는 여기는 다 좋은데 술이 없어, 라며 깔깔댔다. 요즘 말로 하면 정병 커밍아웃 같은 게 거기서는 비밀도 아니었다. 병명은 달라도 우리는 미쳤구나, 그런 동질감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만약 정병도 전염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겸손하고 친밀할까.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정신분열증과 공황장애를 번갈아 가며 앓는다면. 얼마나 공평하게 서로를 극복할까. 그런 희망마저 들었다. 가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 같다. 그곳에서 머문 한 달. 그 시간은 내 삶에 가장 평온한 나날이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종일 거실에 앉아 색종이를 접던 사람들. 쇠창살로 막힌 옥상 구석에 군용 담요를 깔고 고스톱을 치던 사람들.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나와 미래, 줄리아, 근이. 우리는 나이가 비슷했다.(정확하진 않지만)
나를 누나라고 부르던 미래는 언젠가부터 내 뒤를 따라다녔다. 말투가 어눌하고 침을 흘렸는데 아마도 약 때문인 것 같았다. 줄리아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줄리아는 대부분 화가 나 있었고 근이는 이러나 저러나 웃기만 했다.
거실 창으로 햇볕이 쏟아지는 정오가 되면 우리는 소파로 모였다.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환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아무 말이나 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침묵했다. 미친 사람끼리는 새로울 것도 없었으니까.
죽을 수도 술을 마실 수도 폭력을 쓸 수도 없는 일상. 나는 도무지 성과를 낼 수 없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병을 훔치려고 애썼으나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그럼에도 가장 평온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나의 우울이 거듭된 자살 시도가 그들에게는 물음표가 아니었고 병증의 기호에 불과했다는 게 지금도 달게 느껴진다.
*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