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로 배운 겸손_승연

: 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by 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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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순간을 견뎌야 한다. 나는 이걸 수술 직후에 배웠다. 본래는 왼쪽 전폐절제술을 받기로 한 게 아니었다. 왼쪽 폐는 상엽과 하엽 두 덩이로 나누어져 있고, 오른쪽 폐는 상엽과 중엽과 하엽인 세 덩이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이중 왼쪽 폐 상엽인 좌상엽을 자르고, 아래에 남은 좌하엽을 위로 올려 기관지와 연결할 예정이었다.


서울대학교로 병원을 옮기기 전에 머물던 병원에서 수술 방법을 설명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 가슴을 열어 폐를 감싸는 갈비뼈를 잘라 꺼내고, 폐를 꺼내 일시적으로 숨을 쉬기 어려운 동안 허벅지에 기계를 연결해 인공적으로 숨을 쉬게 하겠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방법으로 수술을 했을 때 내가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아무튼 서울대학교에서 수술하기 전날, 다행히 갈비뼈를 자를 필요 없이 수술할 수 있다는 걸 확인받고 수술 동의서를 썼다. 그리고 9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직감했다. 좌상엽만 제거한 게 아니라 분명 전폐절제술을 받은 거라고.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몸을 가진 내가 그걸 느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환자실에 온 엄마에게 물었다. "다 자른 거야?" 엄마는 1초쯤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몸이 예상한 터라 놀라거나 울지 않았다. 수술장에서 좌상엽을 자르고 자른 단면을 확인했더니 아래까지 암세포가 퍼져 있었다고 했다.


살려고 들어간 수술장이니 중간에 수술의 범위가 바뀐다고 해서 나한테 선택권은 없었을 거다. 수면마취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있는 나였더라도 당연히 암세포가 퍼진 장기를 다 잘라달라고 했을 거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좀 무섭기도 했다. 병을 앓는다는 건 언제든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기대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일주일 뒤였나. 퇴원 날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먹는 아침을 '서양식'으로 선택해 샐러드와 스프, 빵을 우아하게 먹을 생각이었다. 산호포화도 측정기부터 수액, 자가통증조절 장치 등 몸에 주렁주렁 달린 선도 떼고 나가려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민망한 얼굴로 다가왔다. "재수술을 해야할 것 같은데." 주기관지에도 암세포가 남아 있어 기관지를 잘라 이어붙이는 수술을 추가로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첫 번째 수술 후에는 비교적 회복도 빠르고 멘탈도 나쁘지 않았다. 조그라든 폐를 펴는 과정이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숨이 차지 않아서 이대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수술을 받고 나니 회복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게다가 기도를 봉합했기 때문에 턱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도 위험해서, 턱 아래 피부와 쇄골 부근의 가슴 피부를 철사로 연결시키는 조치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니까 일주일 내내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상태로 근육이 빠지지 않게 때마다 복도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영양제와 수액을 건 폴대와 산소통과 자가통증조절 장치를 질질 끌며, 복도 바닥만 보고 걸어다니는 나를 떠올리면 불쌍하면서도 웃기다.


기도의 수술 부위가 아무는 동안 나는 뒷목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턱과 가슴을 붙인 자세로 버텼다. 덕분에 20대 초반에 목주름이 2.5배 정도 짙어졌지만, 목주름이야 7살 때부터 생기기 시작해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죽다 살아났는데 목주름이 대수야?


어쨌든 두 번째 수술 후 더딘 회복 기간을 견디는 동안, 나는 내 몸에 세입자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면서 양질의 월세를 내다보면 몸이라는 주인이 감명을 받아 계약 기간을 연장해주는 식. 그 정도로 나의 몸에 애를 써야 겨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 수 있는 거라는 배움 하나.


덕분에 노인의 혜안 한 가지는 습득한 것 같다.


*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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