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잠이 오지 않는다며 엄마는 늦은 새벽 독일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자주 연락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바쁜 것이 지나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지금까지 네가 많이 기다렸으니 이제는 내가 기다려야지’라고 한다. 추운 겨울바람에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끊어버렸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사랑하니 기다렸고 사랑하니 아파야만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자주 후회한다 말한다. 모든 것이 당신의 젊은 날의 업보라 여기는 그녀는 자주 눈물을 흘린다. 당신은 어렸다. 그래서 서툴렀다. 당신의 상처와 싸워야만 했던 그날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에게 주어야만 하는 사회가 내린 사랑의 정의는 당신을 지금까지 기억의 고통 안에 살아가게 한다.
엄마 당신의 짐을 한때는 내가 기꺼이 지고만 싶었다. 그리하여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당신이 나에게 와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런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당신께 주어진 삶은 오직 당신의 것임을. 당신이 나의 엄마이기에 외로웠던 수많은 그 날들 또한 또한 오직 나의 것이었음을.
이 깨달음은 수많은 눈물의 밤들 뒤에 천천히 찾아왔다. 그것과 함께 찾아온 자유는 뜨거웠던 여름이 언제 존재했는지도 모르게 찾아온 겨울처럼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들었다. 나는 완전히 자유하다. 나는 당신을 이전보다 더 사랑한다. 어쩌면 당신이 내게 비치는 후회의 감정들이 조금의 위로가 되었던 걸까. 당신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차가운 콧물을 닦아내던 8살의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언젠가 당신 또한 그 고통에서 자유하게 된다면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경지를 맞이하겠지. 당신의 남은 생이 오로지 현재의 것들로 충만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이 더 이상 울지 않길 소망한다. 많이 웃고, 사랑하며 더 따스한 말을 서로에게 하자.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