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한국 음식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엄마의 밥을 좋아하는 것이었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긴 해외여행 중에도 한국 음식을 그리워 하기보다는 엄마의 집 밥을 그리워했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엄마의 집 밥을 그리워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매운 음식, 치킨, 배달 음식 등이 그립다던데 나는 생뚱맞게 엄마의 무나물이 그립다. 그 달달하고도 고소한 엄마의 무나물이라면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프랑스 집의 냉장고는 매우 작다. 냉동고도 고기 3장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육류 중심의 원푸드 다이어트를 했다. 무언가를 사면 그걸 소진하기 전까지는 냉장고에 무언가를 살 수 없었다. 하지만 고기가 금세 질리기도 했고 한국에서부터 환경을 위해서 육류 식품을 줄이고자 했고 고기가 얼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다양한 이유에서 지금은 의도치 않게 자연 식물식을 하고 있다. 엄마가 없는 생활은 정갈하고도 영양가 있는 건강한 음식에서 벗어나 원푸드 다이어트를 거쳐 자연식물식을 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없는 생활을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매우 부지런해야 한다. 주말 아침이 되어 낮잠을 자고 나면 목욕탕 청소부터 베란다 청소까지 끝나 있을 것을 보며 기함을 토했었다. 그럴 때마다 주말에는 좀 쉬라면서 엄마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었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주말에는 더 일찍 일어나서 빨래방에 가고 집을 정리한다. 그리고 일주일 치 식량을 조금 더 싸게 사기 위해서 강을 건너 장을 보러 간다. 이조차도 조금 늦어지면 햇볕이 너무 따갑고 살이 빨갛게 익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한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엄마의 바쁜 주말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해야 하는 귀한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사는 집은 세탁실이 따로 없다. 그래서 매주 주말마다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처음 빨래방을 이용하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양말을 건조기에 돌렸는데 조카 양말 사이즈로 변해있었다. 건조기를 사자는 나의 말에도 엄마는 굳이 햇볕에 빨래를 말렸었다. 그러기에 울이 섞인 면제품을 빨면 수축이 일어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양말을 줄어들고 말았다.
아마 내가 프랑스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그건 순전히 엄마 탓이다. 엄마의 무나물이 그리워서, 엄마가 보송하게 말리는 빨래가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이다. 엄마는 늘 이야기한다.
“넌 뭐만 하면 내 탓이니?”
이번에도 그러겠지.
그럼, 나는 언제나처럼 당당히 이야기할 거다.
“응 엄마 탓이야. 엄마 무나물 때문이고, 엄마 빨래 때문에 돌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