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Jul 03. 2022

선입견이 사라지다.

해결하고 난 뒤에는 영웅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 당시에는 마음이 많이 상해있었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 더 속상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았을 해프닝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안 좋은 일을 경험할 때마다 나의 기질들이 올라오는 것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기질적으로 겁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린다. 그래서 낯선 환경을 매우 두려워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든 가리고 살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경력으로 가리고 살았고, 나이가 들면서는 좋아하는 지인들만 만나고 살면서 그렇게 낯선 것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런 기질이 나타나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두들겨 본 돌다리도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야 하는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어릴 적 나는 그런 환경이 오면 귀와 입을 닫아 버린 채 살아왔고 그로 인하여 말문도 늦게 트이고 항상 느린 아이였다. 그런 내가 겨우 벗어 버린 옷을 다시 그것도 억지로 입게 된 것이다. 


마음이 어려운 상태로 다음날 어학원 수업에 들어갔다. 우리 반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우크라이나에 신랑을 남겨두고 아들과 프랑스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친구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는 그 친구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결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유심 사건이 터진 날 그 친구가 결석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보통날과 다름없이 그 친구가 수업에 들어왔다. 그리고 반 친구 한 명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며 그 친구를 향하여 걱정하기 시작했고 모든 친구들이 그 친구의 안부를 살폈다. 정작 우크라이나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답을 했는데 내가 울고 말았다. 전쟁이라는 해결할 줄 수 없는 상황을 겪고 있는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눠주는 모습은 어제의 해프닝을 겪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유럽 여행 시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OO국적 소지자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 이런 나라 사람들은 이럴 것이고, 어떤 나라 사람들은 어떨 것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날 경험한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날, 다른 사람 보다 3배의 유심 가격을 지불한 것이 나의 안일함의 대가가 아니라 선입견이 사라지는 값을 지불한 것임을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은 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