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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l 25. 2022

나 홀로 생일

어제 택배가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을 때 내심 생일 선물이라면서 기대했다. 하지만 전화번호 착오로 인하여 고생만 했다.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 자고 일어났는데 양팔이 너무 아프다. 20kg가 되는 택배를 이고지고 왔으니 그럴만하다. 하지만 오늘은 생일이니,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은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매년 생일은 분주했다. 유난히 많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하고 축하는 받는 것이 쑥스러워서 생일에는 오롯이 축하하며 홀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조금은 유난스럽고 다정한 가족과 친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일 앞뒤로 생일 주간을 보내며 몇 번의 생일 파티를 했고 6월 한 달 동안은 생일 케이크를 원 없이 먹었다. 게다가 나는 언니와 생일이 3년 10일 차이 나고, 둘째 조카 역시 같은 달 생일이다. 그야말로 6월은 축제의 날들이었다. 


나는 매년 생일 주간을 맞이하면서 때로는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엄마의 생일파티는 더욱 그러했다. 생일자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며칠 전부터 물어보며 미역국과 함께 정성스럽고 성실하게 생일상을 만들었다. 나는 생일의 주인공이 되면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잡채를 이야기했었고 엄마는 한 번도 귀찮아하는 내색 없이 형형색색의 잡채를 먹게 해주었다. 


이런 시끌시끌한 생일 주간 속에 내가 지키는 가장 큰 원칙이 있다. 그건 생일날에는 온전히 홀로 있는 것이다. 하루 휴가를 내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장소에 가면서 오롯이 시간을 보내며 나를 축하해 주었다. 그래서 5년 전 생일은 꿈에 그리던 파리에서 나 홀로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해외에서 두 번 맞이하는 생일이다. 두 번다 공교롭게 프랑스이지만 마음의 무게는 다르다. 5년 전에는 홀로이 생일 파티를 하면 센 강을 따라 걷는 것이 참 좋았는데 오늘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못해 쓸쓸하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생일상과 친구들이 수없이 해주는 생일 주간은 당연히 없다. 그리고 나 홀로 잘 보냈던 생일날도 참 서럽고 쓸쓸하다. 


그래도 여전한 건 친구들의 많은 축하이다. 예전처럼 생일 밥 약속을 잡거나 기프트콘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너무 고마웠다. 특히 커피 기프트콘을 보내려다가 펑펑 울까 봐 참았다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지금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한국에 있는 얼음 동동 뜬 차가운 커피이기도 하고, 친구의 넉살이 참 고마웠다. 나의 서러운 마음을 희석시켜 주었다. 


“딸,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엄마는 매년 똑같은 말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연신 미역국을 먹지 못했다며 걱정에 걱정을 했다. 한국에서 프랑스 택배를 보낼 때 식료품을 보내는 경우 조심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인스턴트 미역국을 보낸다는 엄마를 만류했었다. 사실 엄마는 생일이 지나고 출국 하라고 했다. 하지만 시기상 너무 늦어지는 거 같아서 괜찮다는 말을 하고 생일 바로 전에 출국을 계획하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생일파티도 하고 왔는데 오늘은 왜 서럽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역만리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한없이 축하를 보내고 있으니 축 처져있지 말고, 나 혼자 생일 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쁜 가랑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지역 맛집인 쌀국수 음식점에 가서 뜨거운 면 요리를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워보려고 했는데 오늘 휴일이란다. 어학원에서 꽤 거리가 있었기에 점심시간이 지나가 있기에 다른 식당에 들어가서 요리를 주문해 먹는 것도 무리가 있어 마음이 삐뚤어진 채로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포장이 가능한 중국집을 발견하였다. 평소에도 중국음식을 좋아하는지라 들어가 포장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주문할 음식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구석 한편에 있는 미역 줄거리로 만든 샐러드가 보인다. 


‘그래 미역국이 없으면 미역 줄거리라도 먹자.’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몇 가지 중국요리와 미역 줄거리를 포장해서 먹었다. 아주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은 것 같다. 여전히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길거리를 나가는 것도 어학원을 가는 것도 무섭지만 그래도 용기 내서 오후 수업을 다녀 왔 다. 그리고 며칠 전 다녀왔던 카페에 다시 가서 눈여겨보았던 생일 케이크도 먹었다. 


오늘부터 이곳은 3일간 지역 축제가 열린다. 지역 축제가 열리는 것을 한국에서부터 알고 있었고 내 생일에 시작해서 무언가가 더 신나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다양한 일을 당하다 보니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축제의 메인 무대인 공원 옆에 살고 있는 나는 공원의 음악소리를 몇 시간씩 듣고 있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가장무도회도 조금 있으면 열릴 시간이다. 그 순간 무거운 마음보다는 궁금함이 더 커져서 잠시 공원에 다녀왔다. 나폴레옹 3세 시대의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사진 찍으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보니 나도 웃음이 나온다. 그래, 힘들어도 웃자. 어쩌면 한국에서 오는 택배가 생일 선물이 아니라 이곳에서 어떻게도 지내는 나의 모습이 생일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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