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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Dec 20. 2023

안녕, 프랑스

Au revoir, la France!

한시간 가량 진행된 프랑스어 말하기 시험을 뒤로 하고 우여곡절 가운데 환승공항인 파리 샤르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공항에 도착하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고군분투했기에 제대로 먹은 식사가 없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들어가 주문을 위해 줄을 섰다. 내 앞에 몇몇 사람이 있었는데 영어도 프랑스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주문을 받는 서버도 주문을 하는 사람도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나의 주문차례가 다가왔다. Menu*로 주문이 가능하냐는 나의 간단한 프랑스어에 주문을 받던 서버는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 프랑스어를 꽤 잘 한다고, 여행왔는지,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묻는다. 프랑스에 있는 시간동안 누군가 나에게 프랑스어로 짧은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 늘 곤혹스러웠는데 이 순간만큼은 참 반갑다. 오늘 이렇게 나는 파리 공항에서 프랑스어를 퍽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공항에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한권 정도 다 읽을, 한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끝에 태극마트가 그려진 비행기가 공항에 연결되었다. 며칠전 같이 어학연수를 하던 한국친구가, 얼마 전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이야기했었다. "언니, 공항에서 비행기 들어오는 거 보면 괜히 울컥할꺼예요."그때에는 그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비행기가 대수라고, 무슨 태극마트가 별거냐고 그냥 그 친구가 한 이야기를 외면해버렸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아 태극마트다, 어 한국사람들이다.'를 속으로 외치며 줄지어 내리는 한국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비행기에 탑승을 했고 한국을 향한 마음이 잠시 사라졌다. 복도쪽을 향해 있던 나의 자리에 내가 다가가자 마자 뒤에 계신 한 여성분이 자리 교환을 요구하신다. "혼자 왔어요? 우리는 둘이 와서, 자리를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데..." 너무 당당한 요구에 당황하며 승무원에게 물어보고 교환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바꾸어도 된다는 말에, 혹시라도 비행기 사고가 나게 된다면 신원확인을 위해서 승무원한테 이야하겠다고 잠시 고집을 부렸다. 결국 불편한 얼굴로 여성분은 승무원에게 요청했고 승무원은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연거푸 인사를 하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그 여성분이 나에게 한 말은 "거봐, 된다니깐, 유난스럽게..."라는 대답이었다. 기분이 잠시 불쾌하였지만 그 분의 태도로 인하여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박사과정을 지원하지 못한채 한국으로 귀국하는거여서 나의 기분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반가운 마음과 실패했다는 철저한 마음, 두가지가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꽤 긴 시간을 달려 한국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그동안 항상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면 가장 느린 손님이었다. 어차피 타고 내릴 거 서두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도, 내리기 위해 조급히 일어나 준비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람들의 조급함이 이해간다. 비행기에 내려 뛰듯이 걸어가 출국수속을 하고 짐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의 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 파리 공항도 프랑스이지, 그래서 늦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짐이 오지 않았다며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신고를 한다. 프랑스에 살면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언젠가는 된다.'는 거였다. 프랑스의 행정은 일처리가 느리기로 악명높다. 하지만 살다보니 한국의 행정이 유난히 빠르고 정확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비교대상으로 인하여 프랑스 행정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나는 짧은 시간동안 항공기에서의 자리교환과 나이 오지 않은 짐으로 인하여, 소비자 중심의 한국과 생산자 중심의 프랑스를 다시 한 번 경험하였다. 이렇게 두 나라에 양다리 거친 기분으로 출국장을 나가 배웅나온 가족을 만난다. 


*Menu : 우리나라 세트메뉴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메뉴(판)은 La carte이다.  


그만 정리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왜 그래.


일년 전, 방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나에게 했던 엄마의 말이다. 엄마는 무언가를 계속 버리고 정리하는 내의 모습이 꼭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 같아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때는 이렇게 쉽게 돌아올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성공적으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장학금이 우습게 해결되어 두팔벌려 우수의 프랑스 대학이 나를 맞이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첫번째 관문인 어학연수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채 그렇게 패배의 감정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이제는 안다. 나에게는 두 개의 방이 있다고. 비록 프랑스의 집은 정리하고 들어왔지만 프랑스와 한국에 두 개의 공간이 있고, 그 공간들을 잘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가구를 다시 샀고 공간을 가꾸기 시작했다. 늘 정해진 것, 미래의 안정된 것으로 마음이 향해 있다보니 현재의 시간들이 임시처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으니 지금의 공간과 시간을 잘 가꾸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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