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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Dec 04. 2020

6년의 사회 생활을 잠시 쉬어가며

2015년 1월 - 2020년 12월

2013년 취업준비 

2014년 취업준비 

2015년 3번의 취업

2019년 이직


잃어버린 시간 2020년이 이제 한달 도 채 남지 않았다.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는 여행관련 업종으로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올해는 그야말로 버티기 전략으로 한 해를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코로나가 오기 이전부터 계획했던 가족 계획에 성공했고, 

야근이 일상이었던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 뒷말은 이하 생략.. 

항상 열심히,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던 나 또한 아기가 생기면서 조금은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한 해를 보냈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커리어지만 어느덧 사회에 입성한지 6년이 꽉 찼고,

요즘들어 그때 그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취업 절벽, 고용 절벽. 

해마다 나오는 단어이고 날이 갈수록 극심해진다고 하는데, 내가 취업 전선에 뛰어든 2013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호기롭게 학교를 졸업하고 1년이나 미국을 다녀왔던 터라 나의 경험과 상관없이 나는 그냥 1년 반 이상 공백이있는 백수일 뿐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토익점수를 올리고, 백 개가 넘는 이력서를 돌리고, 그 사이 대기업 공채는 3번이나 흘러갔다.

서류탈락, 필기탈락, 면접탈락, 최종면접 탈락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점점 우울해졌고,

이력서의 한 줄에라도 목메기 위해 자격증이라도 더 따볼까 했지만 생각과 달리 의욕도 점점 꺾여만 갔다.


집에서도 고3때 보다 더한 히스테리가 불쑥불쑥 표출되기도 하고, 점점 예민해지는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 또한 위기를 맞았다.

그렇게 1년 반의 기간 끝에 

정말 작은 제작사에서 2015년 1월부터 일을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원하던 직종도 업무도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오래다닐 수 없었던 시작이었다.

3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작은 환경관련 비영리단체로 이직을 하게되었다.

일당백이 되어야하는 회사였기에 인턴이지만 명함은 대리였고 업무량은 팀장이었으며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퇴근은 늘 자정을 넘기곤 했다.


동료들과 한 잔 기울이며 지내기를 6개월, 현타가 왔다.

낙천적인 편이지만 주변 친구들이 다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비교하고 못나져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날, 모든 직원이 싫어하던 동료와 크게 트러블이 났고, 전후사정 없이 윗선에서는 낙하산으로 들어온 그녀의 편을 들었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아니 어렸고, (직장 생활을 바꿀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고...)

6개월이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만큼 열심히 일했기에  

아쉬울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라고 하기도 민망한 회사에서의 생활이 마무리 됐다.


다시금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돌아왔다.

매일 스벅으로 출근을 해 취업 공고를 뒤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처음보다는 마음을 다잡는 것도 수월했다. (수월했던 것 같다. 그 때의 공백에 대한 기억은 대한  그렇게 고통스럽게 남아있지는 않다.)


곰이 파와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다는 100일간의 시간 동안 한 회사의 서류, 1차 면접, 2차 면접을 치뤘고

싱가포르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제조업계의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2015년 3번째 회사였다. 이 곳에서 나는 약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곳도 쉽지는 않았다. (ㅋ_ㅋ 쉬운 회사가 어디 있으랴) 

들어갈 때는 좋아서 울고 나올 때는 질려서 울었다.


1. 내 포지션이 내가 입사하며 만들어진 자리라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중고신입인 나를 뽑은 것 같다.

2. 싱가포르 본사와 일하기 정말 힘들다.

3. 지사이다보니 젊고 패기넘치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되는 공기업 같은 특성이 있었다.

4. 직원이 몇 명 되지 않아 4년 동안 막내만 했다.

(구구절절 나열하자면 끝이 없으니 이하 생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있는 해외 출장으로 지나고보니 참 감사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멈춰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퇴사를 감행했다. 


2019년 6월, 애매한 30대, 기혼 여성, 가임기 여성

사회에서 기피하는 모든 타이틀을 단 채로 말이다.


또 다시 고행길이 시작됐다. 다시 곰이 파와 마늘을 먹기 시작했다.

한 달은 너무 너무 좋았다. 

때 마침 있는 남편 생일에 맞춰 진수성찬은 기본 케이크까지 직접 굽는 정성을 쏟아 붓기도 했다.

베란다 텃밭을 가꾼다며 오바 똥을 싸기도 하고 좋아하는 베이킹도 마음껏했다.

심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가사노동으로 싸울 일도 없었다.


하지만 두 달이 넘어갈때 쯤 다시 불안해졌다. 이러려고 그만둔 회사가 아닌데.

정말 다행스럽게됴 (그 때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정확히 100일만에 4번째 직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염원했던 스타트업(왜 그랬을까)으로 젊음이 느껴지는 곳으로.

아뿔사, 입사 첫날 '이 곳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곧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다. 


항상 취업운이, 회사운이, 상사운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냥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것 뿐인것 같다. 

그냥 조금 많이 안 좋을 때도, 그냥저냥 버틸만할 때도, 간혹 문득 어쩌다 하루(월급날) 일할 맛 난다고 생각되는 날들이 반복되는 날들이 있을 뿐.


취업이, 이직이, 또 기타 여러문제로 너무 힘들 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가 지금 잠깐 내리막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사회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나 또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지만,

(30대 기혼 가임기 여성vs 30대 후반 기혼 워킹맘, 무엇이 더 별로인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냥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또 살아내봐야겠다. 

또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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