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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May 04. 2021

비가 오는틈에 꺼내보는 우울함

feat.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비가 오는 틈에 고독함의 포텐이 터지고 아가가 잔다.

내 정신이 나가기 전에 얼른 블루 무드를 즐겨야(?) 한다.


아기가 유독 낮잠을 못 자 안겨만 있던 날이 있었다.

새로 장만한 신발 교환을 위해 퇴근 후 매장으로 향하던 남편이 전화해 나에게 말했다.

"어디야?" 

지금 장난하냐부터 시작해서 육두문자를 날리고 싶었지만, 나의 안부를 묻는 질문이었음을 알기에 최대한 마일드하게(?) 쏘아붙였다. 

"집이지, 어디긴 어디야."


또 하루는 그의 아침 출근길이었다.

비즈니스 캐주얼이 허용되면서 아침이면 옷 입기 좋아하는 그의 소소한 행복이 이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당일의 컨디션과 날씨에 따라 그 날의 ootd를 정한 뒤 항상 나에게 물어보는 것은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그의 하나의 표현이다. 

그래서 나 또한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깃을 세웠다 접으며 어떤 게 더 낫냐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곤 하염없이 작아지며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두드러지는 이틀째 감지 못하고 제대로 묶지도 못한 헝클어진 머리

매일 잠옷만 입고 있고, 잠깐 나가게 될 때면 입는 몇 일째 같은 옷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보단 아기를 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아니 그보다 우선시되는 건 냉장고에 있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는 처지는 음식들

'먹는다'라는 표현 보단 '처치한다' 혹은 '처리한다'가 어울리는 편이다.


반복되는 아침의 풍경이지만

그 날의 질문은 부메랑이 되어 무던히도 야속하고 지독하게 외로웠다.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최대한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갑자기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잠옷에 아기띠보다는 여전히 쇼핑과 옷 입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단순하고 고된 일상을 살기보다는 다양한 자극을 즐기는 사람이다.


비록 

우는 아기를 그냥 둘 수 없어 아기띠를 한 채 똥을 싸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아침 6시부터 마시고 싶었던 물을 오후 3시에 마시기도 하지만,

늘어진 뱃살은 죽을 듯이 노력한다 해도, 처진 가슴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이길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그치고 내일이 오면 나는 다시 웃으며 아기를 위해 재롱을 떨겠지.

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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