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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Jan 12. 2021

정든 미니오븐을 떠나보내며

지각 변동 직전의 나의 요즘, 가까워지는 너를 만날 시간

이제 내일이면 33주 임산부에 접어든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임신, 출산 관련 용어가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는데 어느새 임신이 끝나간다.

배에 10kg 정도의 무게를 달고 10개월 짜리 긴 훈련을 치르고 있는 느낌


이제 슬슬 몸이 무겁다, 허리가 아프다 등의 불편함을 몸소 체험 중이다.

하지만 내 육신은 이미 엄마모드 발동, 아직 엄마가 뭔지 모르겠기는 하지만..


나는 요즘,

가구, 침구, 옷, 기저귀 등 그녀의 의식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 중이다.

3kg 정도로 나오는 주제에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돈도 많이 쓴다.

우리 아직 모르는 사이인데 내가 이렇게 잘해줘도 되는건가..싶다.


이번주는 주방을 정리 중이다.

젖병 소독기, 분유제조기, 전기포트 등 째깐한 녀석의 식사 준비에 필요한 물건들을 놓기 위해 

결혼 후, 하나하나 모아온 나의 정든 주방 콜렉션들을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공간이 부족해 치울 수 밖에 없다. (눈물을 훔친다.)

라이언 샌드위치 메이커, 착즙기, 믹서기, 와플메이커를 잘 닦아 밀봉한 뒤 주방 수납장 어딘가 깊숙히 잘 넣어놓았다.


그리고 오늘은 미니 오븐 차례,

당근마켓에 내놓기 위해 베이킹소다와 뜨거운 물을 이용해 구석구석 깨끗이 씻고, 스테인레스 전용 세제로 광택도 내주었다.

오븐을 닦는 30분 남짓한 시간 속에 오븐과 함께 했던 많은 추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너무 갖고싶어 오븐과 드립머신, 그리고 전기포트까지 셋트로 혼수로 장만했었다.

요리와 베이킹에 취미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오븐에 애정이 가장 많이 쌓였다.

요 작은 오븐으로 우리 둘이 근사한 날이면 스테이크를 구웠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손님이 오는 날이면 스콘이나 쿠키를 잔뜩 구워 달콤함을 주변에 나누며 행복했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사용했던 물건이라 깨끗이 닦이지 않는 곳도 있고 사용감도 많다.

하지만 이 물건을 단순히 더러운 중고물품이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과 시간으로, 그 동안의 세월의 흔적을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지금 이 오븐을 보내기가 몹시 아쉽지만, 

앞으로 그 자리에 있을 새로운 시간과 추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출산 D-50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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