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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Sep 25. 2020

고마움에 남겨보는 손발사라지는 돌아보기

우리의 첫 만남과 요즘

8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함께’의 시간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문제는 정말로 브런치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둘이 아닌 셋이 되어버려 자꾸만 새로운 경험과 감정들이 치고 올라와 그 동안의 둘 만의 시간이 자꾸 묻혀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돌아보는 우리의 첫 만남과 요즘의 고마움


되게 풋풋하고 순수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었을 것 같던 20대의 진짜로 햇살 좋은 어느 날 시작되었다.

20대 중반에 나는 한국 사람들끼리 참가하게 된 미국 연수 프로그램으로 미국 동부에서 1년 간 살게 되었고, 준비과정에서부터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는 참가자 6명을 모아 함께 쉐어하우스에 살게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는데 그 친구가 말했다.

“아 참! 우리 집에 너랑 되게 잘 맞을 것 같은 오빠가 한 명 있어. 영화보는 것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대.” 

“아 그래?”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 오빠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날은 한 달간 함께 듣게 된 문화 수업에서였다.

친구와 함께 우르르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집 사람들 중에 왜 인지 친구가 말했던 ‘그 오빠’가 누군지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고, 멀끔하게 차려 입은 그 사람을 보며 심지어는 ‘친해져보고 싶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운명의 상대에게 보이는 후광이었을까!’


그 후 굉장하게 굉장히 외향적인 성향의 나는 내가 살던 아파트에 친구들을 불러 여러 번의 홈파티를 열었고, 마침 친구 집 사람들이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파티 요정이라는 타이틀과 안 어울리게 나를 10년간 알코올형 인간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포기한 친구가 있을 만큼 알아주는 ‘알쓰’인 나는 그 날도 주최자이지만 맥주 한 캔에 온 집안을 뒹굴뒹굴 굴러다녔고, 추후 ‘그 오빠’에게서 이상한 끼를 부리는 되게 이상한 여자라는 첫 인상이 있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그 오빠’랑 엮일 일이 생겼다. 다 같이 가기로 한 지역 축제에 정말 우연히 사람들이 다 빠져 나랑 둘이 가게 된다던지, 현장 학습에서 함께 다니게 된다던지 그런 일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삼귀게’된 시발은 아마 그 날이었던 것 같다.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이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사건은 일명 ‘코스트코 사건’이다.

삼삼오오모여 코스트코를 간 날이었는데, 그 오빠는 먼저 참가한 학교 후배를 보고 늦게 오겠다고 했다.

어쩌다 보게 된 그 오빠의 학교 후배는 얼굴도 작고 다리도 긴데 똑똑하기까지 했고 왠지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 좋아하던 프라푸치노 50% 할인 이벤트에도 흥미를 잃고 말았다. 

풀이 죽은 상태로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나왔고 오빠는 웬일인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흥’이었다.

그 때 살던 아파트는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지하상가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알코올분해능력과 더불어 방향인지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나는 역에서 헤어져 미로 같은 지하상가를 기억을 더듬으며 아파트 입구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많이 헤매지는 않고 집에 잘 도착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오빠가 나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때 부터였을까. 콩깍지가 뿅 씌어 버렸다-.


일련의 썸타는 간지러운 사건들을 지나, 대망의 그 날은 공식적인 첫 데이트 날이었다.

근처 몰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고,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연락이 되지 않아 집에 갈 수도 없기는 했지만, 아마 그냥 기다리고 싶었겠지.

약 3시간만에 나타난 오빠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나를 와락 끌어안았고, 이제 생각해보니 원래의 그에게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용기 있는 모습이란 것을 새삼 깨닫았다. (아! 물론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장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긴장한듯 아닌듯한 시간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버스 안, 그 어색한 공기를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불쑥 내가 말했다. “저기요. 그냥 남자친구 하실래요?”


그렇게 사귀게 된 우리는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독한 취업난을 함께 겪으며 권태기 아닌 권태기도 겪었고,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지독히도 많이 싸워재꼈으며 누구나 한 번은 헤어짐을 생각하게 되는 공포의 결혼 준비도 우여곡절 끝에 함께 넘으며 부부라는 칭호를 달았다. 


그리고 이제 셋이 되는 과정에 서 있는 나는 그 때 그 어리고 풋풋했던 ‘그 오빠’가 어느새 멋진 남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았고 색깔과 모양은 달라졌을지라도 처음과 같은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아직도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에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셋이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만 처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변치 말고 살아 가야지. 오늘 남은 하루는 오랜만에 잘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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