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흐를 자유를 찾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의 나는 둔했다. 세포는 어리고 생각은 민첩했지만, 감각은 무뎠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나서고, 더 짜릿한 운동에 빠져들고, 더 흥미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고, 더 날카로운 이메일을 썼다. 매일 또 매일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월화수목금토일, 비어있는 시간은 끊임없이 약속으로 채우고,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항상 미드와 예능 프로그램이 함께했고,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도 항상 음악과 왁자지껄한 TV 소리가 함께했다.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혼자인 시간, 누군가는 함께일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항상 크고 작은 만남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웠다.
어릴 적 나는 막연하게 무인도에 가고 싶었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 옆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이후로 로빈슨 크루소 시리즈에 빠져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직 나에게만 의존해서 생활하고, 긴 하루를 홀로 채워나가는 것. 불을 피우느라 두 시간을 쓰고, 물을 모으느라 또 세 시간을 쓰고, 먹거리를 찾느라 한 시간을 더 쓰고, 맛은 없지만 더없이 소중한 요리를 만드는 나날.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처럼 나도 외로움에 사무쳐 윌슨을 필요로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 꿈. 로망. 판타지. 그것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도 없지만, 자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미지의 세상에서 혼자 즐기며 가꾸며 사는 인생을 동경했다.
2002년, 중학교에 들어간 나는,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줄곧 해오던 1등을 더 이상 하지 못해 불안했고, 2005년의 나는 2002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등학교에서는 또 얼마나 아래로 내려가려나 불안했고, 2008년의 나는 수많은 선후배, 동기들 사이에서 누구에게나 1등이 되고 싶었고, 2012년의 나는 여자들 중에 가장, 남자들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나의 무인도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더 큰 관심과 더 큰 영향력과 더 큰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스물넷. 내가 원하던 삶은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다. 나의 성이 무너져 내렸다.
오늘. 곧 서른의 나는, 더 싱거운 음식을 만들어먹고, 이따금 정말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며,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그마한 찻잔에 따뜻한 차를 마신다. TV는 꺼져있는 시간이 더 많고, 볼륨은 점점 더 작아지며, 매듭을 엮고 꽃꽂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따금 빠르게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면 찾아오는 불안도 그저 밉지만은 않다. 나는 이곳에서 천천히, 꾸준히 흘러가고 있다. 어제는 스코틀랜드의 라벤더 밭이었다가, 오늘은 발리의 사원이고, 내일은 칸쿤의 해변일 이 곳은, 나만의 섬. 나의 무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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