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스크림이 과제를 제출했는지

아세요? - 사소한 행복의 중요성

by 이여름



날이 쨍쨍 더운 날, 어느덧 여름이 정말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플라잉 요가와 필라테스를 다녀오는 길이라 나시 운동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웠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어쩌지, 문득 지구 온난화가 진짜로 피부로 와닿기는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이렇게 더워질수록 더 많은 에어컨을 틀테고, 그렇다면 지구 온난화는 더더욱 악화될텐데. 이를 어쩌면 좋으리오. 피난이라도 가야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부산 여행에서 서퍼들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번 여름은 꼭 수상 스포츠에 도전 해보자는 것이었다. 육상 스포츠는 아직 할 날이 많으니까. 이번 여름은 동해를 가든 제주를 가든 강릉을 가든 서핑을 진득하게 배워보고 싶었다. 스킨 스쿠버라든지. 어찌 됐든 이번 여름은 수상 스포츠를 배우는 것이 목표다.



오늘은 빅피쉬를 보러가는 날이었다. 개봉 몇 주전부터 기대에 가득차서 꼭 보러가야지. 누구랑 보러갈까? 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영화. 할 수 있다면 맑고 산뜻한 사람과 같이 보고 싶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노란색 황수선화가 가득 그려진 포스터. 금발머리 단발 여자와 한 남자가 꽃밭에 누워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안 보는 것은 죄악이야.



요새는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좋다. 보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 낭만이 가득해서 세상을 필터 씌워 바라보게 하는 영화들. 함께 보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으나 모두 바쁜 터라 아쉽게도 시간이 안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슬펐다. 그렇지.대학생이 되고 나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이 맞지 않아 얼굴을 보지 못한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것도 대단하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보지 못하는 터라서, 최대한 인연이 끊기지 않도록 열심히 유지 하는 중에 있지만 그것이 과연 잘 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sns를 하고 있어서 그를 통해 오는 dm들으로 약속을 잡고는 하는 것 같다. 한때는 고립되고 싶다는 마음에 휩싸여 모든 sns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sns가 좋다. 그게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독선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적어도 남의 삶을 지나치게 들여다보는 절제력은 지니고 있으니까, 아직까지 내게 있어서 sns는 순기능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래서 얼마 전 처음 만난 문예창작 동아리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왠지 너도 이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는 부끄러운 연락. 그는 그 날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휴학생이라 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말을 낚아 채서 “그렇다면 나 좀 가끔 놀아달라”는 말을 했다. 그 때는 언젠가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빠른 3일뒤에 만나게 될 줄은 몰라서 나도 많이 망설여졌다. 다행히 그는 자신도 그 영화를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우리는 을지로 11번 출구에서 만나 마제소바를 먹고 함께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그와 청계천을 걸으며 나눈 대화는 현실주의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낭만도 얼마나 중요하냐는 이야기였다. 때로는 초라한 현실보다 화려한 거짓이 삶을 행복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이야기 했고 남몰래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글로써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런데 이 길은 너무 좁은 길이지 않냐며, 그래서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혼자 속으로 그라면 왠지 운문 부문에서 당선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 말이야, 진짜로 이병률 시인이랑 비슷하다니까. 분명 네 따뜻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거야. 나는 그가 부끄러워 할까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자기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 몇 명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며칠 전 만난 고등학교 동창 s는 내가 낸 책을 직접 사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미안해졌다. 그 책에 실린 내 부분이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책의 가격이 상당히 비쌌어서 나도 주변사람들에게 사달라고 권유하기가 미안했던 책이었다. 사실상 스펙 쌓기 용으로 만든 책이었어서 솔직히 완전한 남이 샀으면 몰라도 제발 지인들만은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 sns 에 올리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s는 내게 자신이 나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만난 l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l 역시도 내 글중 <사랑과 스포일>이라는 글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언젠가 내가 에세이 집을 내게 된다면 이 글이 꼭 실렸으면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렇지. 언젠가는 책을 내야하는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학기 중에는 너무 바빠서 휴학을 하고 해야할 것 같기도 하다. 내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싶은데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마냥 고민중에 있지만 한번 지금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언니에게 부탁을 드려봐야겠다. 출판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뭐 그런 것들. 아무튼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내가 그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것을 입으로 뱉어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진짜 부끄러울테니까! 내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그 안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추악하고 미운 마음까지도 들어가 있어서,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 그런 내 어두운 구석을 들킨 것만 같아서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작가가 되려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이겠지. 부끄러워하면 안된다.




그와 청계천을 걷다가 시간도 늦어지고 슬슬 하품이 나오기 시작해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니 어느덧 동대문이었다. 우리 되게 많이 왔네. 을지로 3가역에서 동대문역까지 걷다니. 조곤조곤이야기 하면서 많은 거리를 걸었구나. 그러네. 갈 곳도 없으니 이만 헤어질까? 그러자.



그는 다음 번에는 자기가 좋은 장소를 데려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 주 시간이 언제 되는지 알려줘. 나는 스케줄러 어플을 켜고 살피다가 화요일이 적당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는 그렇다면 화요일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cu에 들러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샀다. 세상에. 원플러스 원이었다. 나는 그 원플러스 원을 득템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쉽다. 이거 원플러스 원이야. 같이 있었다면 하나 줬을텐데. 그는 그 역시도 집가는 길에 감동란을 하나 사서 갔다면서, 오늘 잔잔했던 시간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닌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밀린 강의와 밀린 복습. 밀린 서류 제출, 밀린 보고서 제출, 밀린 독서, 밀린.. 밀린.. 밀리고 또 밀린..... 원래 이렇게 무언가를 밀려서 하는 타입이 아닌데 요새는 노느라 바빠서인지 자꾸만 할 일들이 밀리는 것 같다. 데드라인을 겨우 딱맞추어 제출하는 타입이 절대 아니란 말이지. 그러나 요새는 너무 신나게 놀고 있고, 덕분에 데드라인을 딱 맞추어 과제를 제출하는 날들이 늘고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마감이 일요일 까지인 과제들을 모두 처리했다. 요새 나를 가장 속상하게 만드는 것은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것. 이것 저것 읽고 싶어서 책은 엄청나게 많이 사뒀는데 도무지 이것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고통스럽다. 휴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친구는 조만간 진로를 찾기 위해 휴학을 한다고 했다. 부러워. 나도 휴학하고 싶다. 휴학을 해봤자 책읽고 영화보고 글쓰고 요가하고 한량처럼 살겠지만.. 휴학을 하고나서 온전한 내 커리어가 생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창 하고 싶은게 많은 나이이니까. 그렇게 밀린 일들을 처리하니 어느덧 새벽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기인 친구도 요새 코딩을 하느라 바쁜지 새벽 5시가 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다. 1학년인데 우리 왜이렇게 힘드냐고요.대학생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니. 날이 더워서인지 요새는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하나씩은 꼭 먹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아이스크림과 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 문득 새벽에 주방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스크림이 나의 과제 제출을 도운 것일까. 먹으면 금방 기분이 상쾌해져서 날아갈 듯한 기분을 만들어주는민트초코과 31요거트, 라임맛 아이스크림,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딸기맛 아이스크림, 입안을 톡톡 쏘는 슈팅스타, 너무 고소해서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마음을 만들어주는 흑임자와 인절미맛 아이스크림까지. 이 수많은 아이스크림들이 제 과제 제출을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하여튼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새는 이런 사소한 것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지긋지긋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다 사소한 행복이 쌓여서 일어난 것 아닐까. 엄마가 걱정된다며 사준 곶감과 양갱부터 친구가 힘내라고 보내준 바나나 블렌디드 초코 칩 프라푸치노, 집 가는 길에 사먹은 흑임자 아이스크림까지. 지금까지 이 많은 것들이 삶을 버텨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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