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응원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되는 일

by 이여름

청약을 들은지 어언 7개월차. 내가 진짜로 어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왠지 해야할 것 같아서 들어두기는 했는데, 언젠가는 쓸 날이 오지 않을까.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적금을 들었다. 적금을 들면서 은행 어플을 살피다 문득 내 스스로 내고 있는 고정 지출들을 살폈다. 청약, 적금, 신문 구독, 음악, 영화. 앞으로 진짜 독립을 한다면 더 늘어나겠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정말 복잡한 일이구나. 멀쩡히 잘 살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다가도 스멀 스멀 걱정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잠깐일 뿐이다. 그냥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일인가보다. 아슬한 시소를 타고 겨우내 균형을 잡고 있는 일.



이렇게 어른 같은 일(?)을 해나갈 때면 내가 진짜 어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주 보고싶다. 나는 자주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핑 돌고는 하는데, 그게 왜인지는 모른다. 분명 당사자인 엄마는 지금쯤 누워서 tv를 보거나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있을텐데도, (심지어 오늘 한 전화에서는 오후에 삼겹살을 먹은 뒤 밤에 야식을 또 먹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딱히 아픈 것도 없고 건강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나는 엄마가 자주 애틋하다 . 그녀와 내가 너무 비슷해서. 그래서 애틋하고, 가끔은 그녀를 보는 것이 힘들기까지 하다. 종종 스물 한 살의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지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도 어린 나이에 혼자 도시에서 지내며 많은 일을 겪었을텐데. 그때의 엄마도 이렇게 점점 어른이 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자신을 기특해했을까. 그때의 엄마도 책읽고 쓰는 것, 사진을 찍히고 찍는 것,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주말에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문득 그녀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가 정말 궁금해진다. 그녀는 나보다 더 당돌하고 강단있는 사람이라서 . 그리고 독립적인 사람이라서 . 문득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마다 그때의 그녀는 어떤 결정을 했을지가 많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 시절 엄마에 대한 정보는 책이 전부다. 어린 시절의 엄마는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가깝게 지냈던 친구는 방 하나가 통째로 서재가 있던 친구였다고 . 엄마는 학교가 끝나면 항상 그 친구의 집으로 놀러가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 오고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 때 친구네 집 서재가 많이 부러웠는지 이사하자 마자 생긴 독채는 서재가 되었다. 엄마는 그 방에 어렸을 때부터 모아온 책들을 고스란히 전시했다. 박완서 작가의 책들부터 조정래의 소설들 ,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까지. 엄마의 고등학교때 문학 교과서와 일기장들이 고스란히 놓여져 있는 서재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리 봐도 엄마는 문학만 읽는 문학 소녀였음이 분명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문학 책 아니면 심리학 책이었으니까.




내가 책 선물을 받으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엄마.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 몰래 책을 팔기위해 싹 포장을 해두었던 것을 들켰다. 엄마는 엄청나게 화를 내며 나를 혼냈다 . 책은 재산이라 두고 두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 엄마가 돈 줄테니 다시는 책 팔지 말라고 했다. 굶더라도 책은 안돼. 엄마 노후에 책방 할거라서 책 팔면 손해야.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약속해. 알았어 엄마. 내가 죽어도 책은 안 팔게. 진짜지? 응. 진짜로. 다시는 책 팔지마. 응.



그렇게 나는 책을 팔려던 것을 들켰고 그 후로 다시는 책을 팔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나보다 더 책을 사랑하는 것은 엄마일 것이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젊은 시절의 엄마와 내가 만났으면 분명 엄청난 친구가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 다음 생에는 엄마와 딸이 아닌 친구로 태어나자. 매일 같이 살면서 책 얘기 많이하고 와인바도 가고 재즈바도 가자. 엄마같은 친구랑 같이 살면 평생 결혼 안해도 될텐데. 왜 우리가 엄마와 딸로 만나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하는 복잡한 사이가 된걸까. 유독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하루를 지내며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머리를 잘랐다. 내가 머리 자른 소식을 누구보다 좋아할 엄마에게 머리 사진들을 보냈다. 마치 호텔 신라의 이부진 회장 같지 않냐며, 나는 장난 스러운 말투로 엄마에게 머리 자른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엄마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게 진작에 자르지 그랬어. 넌 자른 머리가 더 예뻐. 그보다 옛날 머리는 너무 지저분 했잖니. 엄마는 지금 이 머리가 제일 마음에 든다, 라며 기뻐했다. 그런데 엄마는 뒤이어 요새 힘들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쩌다보니 엄마가 책임지고 이끌고 갈 사람이 많아졌다며, 요즘은 도무지 부담감 때문에 도통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름대로 순하게 살으려고 했는데 세상이 나를 가만히 안 두네. 그래도 엄마는 이름처럼 살지 않을거야. 세상에 순응하면 바보가 되는거야. 은주 너도 할 말은 하고 살고 목소리 내고 살아. 아는게 게 힘이니 열심히 배우고.”



엄마의 이름은 순할 순자가 들어간다. 엄마 말로는 할아버지가 순하게 자라라는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순하게 자라라, 알았지. 그러나 엄마는 그다지 순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는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 결단력있고 냉철했다. 부조리한 일을 겪으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맞서 싸웠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든 각오할 마음으로 덤볐다. 그 용감한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는 요새 새로운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 힘들다고 했다. 공부할수록 드는 생각은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거야. 은주 너도 뭐든 배워. 하등 쓸모없어보일지라도 언젠가 배워두면 분명 쓰일 날이 와. 라고 말하며 나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응. 이것저것 배우고 있어. 가끔은 방황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내 인생이라 생각하려고. 언젠가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리잡게 될 날이 오겠지. “



뒤이어 나는 요새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며,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나는 그럭저럭 잘 지낸다. 다만 문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내가 뭘 하고 있기는 한데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 가끔 잘 걸어가다가도 멈춰서서 ‘나 왜 살고 있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그런 것만 빼면 그래도 밥 챙겨먹고, 사람들 만나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잘 살고 있다.



다만 그녀가 걱정될 뿐이다. 그녀가 걱정된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단단한 사람이니까. 분명 잘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구보다 응원하는 사람. 항상 엄마를 생각하고 응원하고 있어. 잘할 수 있을거야. 온 힘을 다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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