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위원장의 논란발언
김병준 국민의 힘 위원장이 더불어 민주당의 조동연 서경대 교수의 등용을 두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12월 1일 CBS 라디오에서 민주당의 조 교수 영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적절한 비유는 아닌데, 아주 전투복 비슷한 것 입고서는 거기에 아주 예쁜 브로치 하나를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굉장히 보기 좋은 젊은 분”이라고 말하며 “(조 교수가) 액세서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기는 좋은데 이분이 그동안 무슨 대중 운동을 크게 한 것도 아니고, 대규모 조직을 운영한 경험도 학자로서 역량을 다 보여 준 분도 아니다”이라는 말을 했다.
그야말로 혐오로 범벅되어있는 발언이었다. 이는 남성 우월주의 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었다. 여성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말. 파이는 남성의 몫이고 여성은 절대 그 파이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배타적 발언. 아직까지도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말이 공식적인 세상에서 들리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상대가 젊은 여성이면 아무리 전문성과 권력을 갖추어도 얕잡고 희롱을 하려고 부터 보는 김병준 위원장의 생각은 정치적 문제를 떠나 사람대 사람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육군 사관 학교 출신의, 국방 우주항공 전문가인 그녀는 순식간에 업적과 실력이 아닌 젊고 예뻐서 등용된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김 위원장은 '여성의 몫은 젊고 예쁜 것’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성의 몫은 ‘사회적, 경제적 능력’이며 여성의 몫은 ‘젊고 예쁜 것’이라는 프레임. 김 위원장이 조 교수를 겉모습으로 칭찬한 모습은 여성을 능력으로 칭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하는 옹졸한 모습으로 보였다. 능력을 칭찬하는 것은 자신의 파이의 몫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기에, 자신의 파이라고 생각하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영역인 겉모습을 인정하려고 드는 것이다.
허라금의 2018. “혐오 발화, 그 억압의 두 얼굴: ‘문화제국주의’와 ‘폭력’”, 『문화와 융합』 에 따르면 혐오를 ‘우월적 권력 지위를 점하고 있는 집단이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타집단을 차별화하고 그들에게 가하는 폭력적인 권력 행사’라고 정의한다. 혐오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자연스레 타자화 하는 권력의 발현도구이며 폭력의 발현도구이다. 김위원장의 발언은 명백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타자에게 내뱉은 혐오발언이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여성이 가진다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논문 표절 논란으로 13일 만에 교육부 장관에서 사퇴한 그가 함부로 다른 이의 능력을 운운할 수 있는 자격이나 되는가?
오늘날 여성은 이렇듯 아직까지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타자화가 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여당에서 반발이 일어났지만, 김위원장은 “나 또한 두 딸을 가진 페미니스트다. 악세사리나 브로치를 여성만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놀랍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것도 공당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조동연 위원장이 여성이라 그런 표현을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가 남성이라도 같은 표현을 썼을 것”이라고 했다. 명백한 궤변이 틀림없다. 과연 조동연 교수가 남성이었다면 그런 표현을 사용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 페미니스트가 한 여성의 등용을 두고 “젋고 보기좋은, 그러나 액세서리에 불과한” 이라는 불쾌한 표현을 갖다 붙이는가? 그는 페미니스트의 의미를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여성이라는 집단에 속해있는 것만으로 여성들이 일상적인 폭력 속에 노출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타자화된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언제든 폭력을 당할 위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여성이 함부로 혐오를 당한다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이란 말인가. 여성이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더 많은 질타의 시선과 조롱은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폭력이 사회적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향해 가는 길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삶을 알아가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를 세삼하게 바라보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부당한 아픔에 함께 연대하고 맞서는 용기있는 마음이 연대하는 길이 있기를 바란다. 나답게 살기를 존중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본인의 능력을 능력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