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사회의 민낯
과로 사회에 대한 불안의 시작은 20년도 1월에서부터였다. 어느 날 갑자기 고등학교 때 다녔던 입시 학원의 같은 반 학생이 전화를 해왔다. 오랜만에 무슨 일인가 싶어 밝은 목소리로 받으니 고3 시절 학원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이었다. 장례식을 가니 학원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대형 학원이니만큼 선생님을 따랐던 학생들이 많았다. 어른들의 대화도 이어졌다.
“그래서 .. 은영씨(가명) 왜 이렇게 된 거예요?”
“과로사래요. 책상에서 엎드려 자다가 그만...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래요.”
학원에서는 선생님의 죽음을 숨기기에 바빴다. 특히나 학생들이 바쁜 시즌에 선생님은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삶을 반복했다. 휴일은 두 번이었지만 다 온전히 쉬지 못하는 휴일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다크서클이 가득 내려온 채로 사무실에 앉아있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이 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 후로 어쩌면 나는 적당히와 타협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죽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내게 강제로 주어지는 의무 중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게 되었다. 돈보다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과로를 주입하는 사회
성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은 마치 개인에게 관대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에서는 매우 확실한 목표를 제시한다. 그들이 더욱 생산에 집착하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할수록 사회에는 더 큰 이득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소외된다. 사회는 마치 아메리칸 드림처럼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을 주입시킴으로써 개개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과잉 경쟁과 학습, 업무, 생산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의 반성과 성찰 능력은 퇴화된다. 그 능력이 퇴화되면 더욱 고차원적인 일, 혁명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oecd국가 중 최장 노동 시간을 기록하는 , 그야말로 사유할 수 없는 사회인 우리나라가 노벨 수상자가 적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의 상품이 아닌 주어진 틀 속에 갇힌 새로운 상품만을 생산할 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우리 시대가 바쁘게 사는 사람을 너무 고평가하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쁘게 사는 것은 물론 멋진 일이다.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저 기계처럼 바쁘게 사느라 사색할 시간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사색없는 바쁜 삶이 과연 맞는 삶일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바쁘게 사는 것이 과연 맞을까?
마무리하며
단순히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행위는 그냥 단순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버튼 하나만 아무생각 없이 누르면 끝인 그 행위는 그저 갤러리에 정보가 축적되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다시 돌려보지 않으면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노동 실태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틀에 박힌 생산을 하기에 바쁘다. 그것엔 그 어떤 사유도, 깊은 고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시간을 들이는 행위가 필요하다. 앞서 예시로 든 사진과 동영상을 예로 들자면, 어느 부분을 자를지를 고민하고 어떤 필터를 씌울지를 고민함으로써 더욱 고퀄리티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물론 시간과 노력은 더 들겠지만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임으로써 고차원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정보는 그저 축적되었던 오리지널의 형태에서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창작물’이 된다. 여유로워야(freedom from)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고(freedom to) 그래야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 자기충족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 노동자의 삶에서도 그렇게 인생에 ‘어떤 필터를 씌우고 어느 부분을 편집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사색하는 삶, 느리게 가는 삶에 대한 포용이 부족하다. 멈춰서 사색하는 것은 그냥 가만히 시간을 버리는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약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멈추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무조건 빠른 것만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사색이 더욱 증요한 가치라는 것. 이제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