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현상과 세대차이에 대한 고찰
청년층(15~29세)의 올해 경제고통지수는 산출 시작년도인 15년도 이후 최고치였다. 이는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30~50대의 두 배가 되는 이 수치는 폐업률, 실업률, 물가 상승률, 부채 증가 속도 등 고통의 무게가 청년들에게 현저히 쏠려있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은 어째서 이토록 아파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청년 고통의 원인과 실태
첫째는 미흡한 정책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정부는 매년 ‘일자리 예산’으로 예산을 편성해왔지만, 그렇게 쏟아 부은 예산은 고령화를 감당하느라 질 낮은 공공일자리 양산에만 급했을 뿐 막상 청년에게 필요한 알맹이 있는 고용이 되지는 못했다. 채용 문턱이 높아진 기업의 구조는 이미 기득권이 형성되어 문턱을 넘은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을 키웠고, 이런 구조는 더 나아가 세대 갈등이 되었으며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껍데기 같은 지원이 아닌,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정부는, 그리고 윗세대는 계속해서 헛발 짚기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둘째는 환경적인 원인이다. 현재의 청년층은 IMF 사태 이후 생존에 위협을 느낀 부모를 보고 자랐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과도한 입시 경쟁에 내던져졌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에 급해 상대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기 보다는 본인의 삶을 살기에 바빴다. 사회는 성찰의 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들은 자기 계발과 책임을 내면화한 상태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는 계층 사다리에 목을 매게 되었다.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철저히 계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게 점점 계층 카르텔은 견고해갔고, 고통을 말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용어의 등장: 이대남
얼마 전 이대남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대남이란 ‘20대 남성들’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그들은 본인들은 “명문대, 대기업, 건물주 루트의 금수저들을 제외한 이들. 수많은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며 갑질을 당하고 있는 집단.”이라 하며 본인들을 자조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신생언론 ‘얼룩소’에서는 이러한 이대남 현상에 대해 고찰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 리서치와 kbs에서 연합해 기획한 이 웹조사는 18세부터 34까지의 남녀 1000명과 35세 이상 남녀 1000명이 응답했다.그들은 응답자에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주고 선택해달라고 했다.
(1)내 미래가 기대된다.
(2)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
상층 청년들은 73퍼센트가 기대된다고 답했으며, 하층 청년들을 58퍼센트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은 계층에 따라 미래에 더욱 자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 중 특히 하층 계급에 놓여있는 청년층은 “계급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하며 현대 사회에 놓여있는 카르텔에 대해 목소리 내고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부모로부터 이어진 사다리를 그대로 자식이 이어가는 식으로 점점 계급이 견고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년은 계속해서 좌절을 느끼게 되며,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결방법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현재 586세대는 더 많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자원을 지니고 있다. 2003년 카드대란, 20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라고 여겨지는 극도의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가와 같이 신자유주의의 불평등한 분배 성향이 전반적으로 기존 자원을 먼저 가진 세대보다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세대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여기에 저출산과 아랫세대의 감소가 겹치면서 지금까지도 부와 권력, 사회적 자원들이 아래 세대로 흘러내려가지 않고 위에 고여있다는 것이다.
이미 분배되어진 것을 다시 평등하게 나누는 방법은 더 가진 자가 본인이 가진 것을 내어놓는 방법밖에는 없다. 가진 자들이 내놓아야 한다. 현재의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 교육과 인프라, 기술과 같이 미래 세대에게 전체적으로 기회의 창이 넓혀지는 투자가 확대 되어야 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많은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함으로써 현재의 ‘이대남’ 현상과 같은 청년의 자조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또한 아랫세대를 ‘불쌍한 세대’라며 이름 붙이기만 반복할 게 아니라, 청년들이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며 그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청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견고한 계급 카르텔 속하위 계층에게도 고소득 일자리가 주어질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202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의 청년 구애 경쟁이 불타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 2030 청년세대에 이만한 관심을 가진 때가 있었나, 청년세대가 정치권으로부터 이렇게 대단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치 주식 시장에서 청년 주식이 매일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판에서 이렇게 청년층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2022 대선에서는 청년층이 대선 결과를 결정 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노력해도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으며 , 어느덧 비정규직 비율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벌써부터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청춘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청년기의 겪는 어려움의 윗세대가 겪었던 어려움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노동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도 아니며, 아이엠에프 이전처럼 비정규직이 더욱 드물었던 시대도 아니다. 88만원 세대와 X세대가 부모세대에 연민을 느꼈다면 이제는 분노를 느끼는 세대가 되었다. 새로운 대선에서는 청년들이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다시금 모두가 노력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사회,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올바른 방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이것은 ‘이대’ (이십대를 줄인 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 되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되는 사회는 이대로는 안되는 사회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윗세대까지 통합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병권, 『21세기 세습 사회: 상위 20% 계급 세습의 해법을 찾아』, 칼폴라니 사회경제 연구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