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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an 16. 2022

그 애에게서는 언제나 잘 말린 셔츠 냄새가 났다.




  에게서는 언제나  말린 셔츠 냄새가 났다.

그 애는 중요한 날에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잘 다려진 셔츠에 코튼향이 나는 향수를 뿌렸다. 가벼운 산책을 하는 날에는 깔끔한 면티를 입고 물향이 섞인 향수를 뿌렸다.

언젠가 그 애에게 싫증이 났을 때조차 유독 그 냄새만큼은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다.혼자 전시를 보러 갈 때나 바를 갈 때면 그의 냄새를 떠올리고는 했다. 나는 그와 헤어진 뒤에도 종종 그와 갔던 장소들을 들러 조용히 머물렀다. 그의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 내게는 당연할 정도로 그가 일상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매일 먹는 우유라든지, 매일 듣는 노래라든지, 뭐 그런 거. 그렇게 이미 내 삶에 스며들어버린 그라서 굳이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그저 그렇게 스며든 채로 천천히 희미해져 갈 뿐이었다.


그러다 그를 마주하게 된 것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혼자 찾은 와인바에서였다. 그 와인바는 평소에 그와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 빔프로젝터로 잔잔한 영화가 흘러나오고 꽃무늬 카페트가 깔려져 있는, 조용한 바.

혼자 와인을 마시러 찾은 바를 들어서자 마자 어떤 의식이 거쳐갈 새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의 냄새가 났다.

순간 그가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얼굴을 숨겼다. 얼굴은 숨긴 채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그런데 그가 없었다.


이상했다. 그건 너만 뿌리는 향수인데. 다시 한번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 보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그와 같은 향수를 뿌렸거나 네가 머물다 갔기에 나는 향이었다. 무엇이 됐든 슬픈 일이었다. 두 선택지 모두 결국은 네가 없다는 거잖아. 한번 흐른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와인을 먹는 내내, 계속해서 그가 생각이 났다. 뭐하고 있는지 조차 근황을 물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서. 너무나 가까웠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멀어져 버려서. 그렇게 그냥 혼자서 와인을 마신 채로 마감 시감이 다가올 때 즈음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때까지도 너는 없었다.


나만 알아서 사랑했던 걔의 모습. 그 모든 것을 각설하고 오직 그 라서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가득 메워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 되지 않아서. 그래서 그를 유독 사랑했다.



있지 난 네가 옷이 별로 없어서 좋았어. 옷은 간결한데 뿌리는 향수는 또 너무 좋은 향수라서, 읽는 책은 또 단테의 신곡 같이 어려운 책이라서. 군더더기 없는 말로 보내오는 너의 문자들과 가끔 날 보러 오는 날 땀에 젖고는 했던 갈색 머리칼과 젖은 셔츠까지. 난 널 라벤더 향이 배인 물향으로 기억해. 늘 너에게선 그런 냄새가 났잖아. 함부로 감정을 말하지 않고 꾹꾹 눌러담는 모습까지 사랑했어.

우리 추억을 생각하면 너무 짧은데 또 너무 예쁘다. 내가 언제까지 널 사랑할지 모르겠어.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얼만큼이나 사랑할 수 있을까? 헤어져도 끝이 아니라는 건 이런 걸 의미하나봐. 그립다는 거 너무 뻔한 말인데 나 아직도 너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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