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세대의 잊히지 않은 슬픔
우리는 종종 진실이나 가치보다는 당장의 잃고 얻는 것들에 마음을 쓴다. 득이 되는 것은 크고 잘보이게, 실이 되는 것은 보잘 것 없게.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만 택하는 일상을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당장 우리네들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힘든 일들은 제쳐두고 마냥 행복한 삶을 쫓으려고 한다. 결국은 다 행복하자고 사는 일인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힘을 들이는 일은 참으로 우울하고 세상 피곤하게 사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을 점점 지워간다. 타인을 지우고, 지우고. 결국은 나만이 남는 삶. 타인을 지운 삶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끝없는 공허함과 이기심, 세속된 마음들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내가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분명 어떤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고 믿는다. 결국 내가 편히 세상을 누리는 것, 자유로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내 목소리를 말할 수 있는 데에는 다른 누군가의 뼈아픈 희생과 노력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지 않을까. 직접 온 몸으로 억압과 부조리함을 겪어내며 ‘다음 세대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어떤 이들의 완고한 의지. 나는 그들의 담대한 이야기들을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많던 순이들은 어디갔을까? 첫 인터뷰의 시작은 바로 이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농촌에서 떠밀려 도시로 넘어와 일을 했던 공장 순이들, 식모, 버스 안내양들. 어린 나이에 생업에 내몰려 일을 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다들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많은 곳으로 퍼져 각자의 생업을 유지했던 여성들. 이들의 삶은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된 삶으로 이어졌고, 이후 이들의 직업은 대체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인 경우가 많았다. 당장의 생계로 인해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은 불안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진숙씨 (가명)은 1955년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73년부터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린 여동생은 6명, 남동생은 1명이었다. 당장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채로 취업 전선에 내몰렸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21년도 11월 27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한 카페에서 만나 이루어졌다.
이 당시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가 농촌출신이었다. 이들 여성들에게 도시는 어떤 곳이었을까? 왜 여성들은 시골에서 보따리를 싸서 도시로 올라왔던 것일까? 변하지 않는, 정체된 농촌 생활, 매일 일해도 끼니조차 때우기 힘든 우물 안 개구리로서의 삶이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도시는 문명의 상징이었으며, 문화와 진보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시골 여성들에게 있어 도시는 동경의 상징이자,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편으로는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오게 되는 장소였다. 버스 안내원, 판매원과 같은 일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은 공장이었다. 도시화는 여성 노동자들을 농촌의 전통적인 공동체, 혹은 집단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기여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전히 가족, 남자 형제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이들이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 사고와 남자 형제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공장의 증대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을 증대시켰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차별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
이 시기 여성 노동자 대부분의 근로 조건은 무척 열악한 상황이었다. 공장 노동의 시간과 작업 환경이 여성 근로자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힘든 조건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환경이 여성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불안, 피로, 골반 통증, 월경 불순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것은 병명이나 발생 즉시에 나타나지 않기에 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 여성들은 단기적인 일자리에 놓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다 할 학력 없이 바로 생계 전선에 놓여 지게 된 그들은 당연히 자신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에게는 배울 시간은 사치였으며, 당장의 가족 부양과 생계를 위해서는 하루하루 공장에 나가 벌어야 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 교육을 받는다는 것, 그렇게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꿈꾼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사치와도 같았다. 당장의 어린 시절부터 생계에 내몰려 학교가 끝나면 숙제를 하기 보다는 농사일을 돕기에 바빴던 그녀들에게 있어 교육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공장으로 올라와 돈을 벌게 된 그녀들에게 결혼이란 곧 이런 공장 감옥의 탈출을 의미했으나, 실상 결혼은 다시금 새로운 가부장제의 편입을 의미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감옥이 예고되어있던 것이다. 독박 육아와 가사 노동, 더해지는 맞벌이는 그들을 끝없이 생계의 바운더리로 내몰았다.
그녀는 중년 즈음에 사이버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학 학사를 따냈다. 그 이후의 그녀의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중년이란 아이를 다 키워내고, 새로운 여유를 가지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사회 복지학 학사를 따기 위해 함께 수업을 들었던 여성들 중 많은 수의 여성들이 중년의 여성이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20대 초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꿈꾸었던 해방을 비로소 중년에서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공장 노동으로서의 해방, 육아 노동으로서의 해방. 그녀는 그렇게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제 2의 인생의 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현재 20대 여성들이 살았으면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 했다. 헤어 나오기 힘든 가난과 장시간의 노동, 힘든 노동환경,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독 등은 그녀를 비롯한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게 했다. 특히 꿈이 많은 여성 노동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것이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커다란 박탈감을 느꼈던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연민하지 않았다. 평생 자식을 위한 돈을 벌었지만 중년인 지금은 본인을 위한 돈을 벌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돈을 모아 언젠가는 자신의 지역에 작은 센터를 열고 싶다는 꿈도 전했다.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행복한 일과 보람찬 일이 가득하기를, 그녀가 그녀 본인을 고귀하게 여기는 귀한 마음을 결코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조금 더 순이 세대에 대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021년 11월 18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이 되었으며, 50, 60년생의 어머니를 둔 여성들이 현재 어머니의 직업을 이야기 하는 설문조사 였다. 투표에는 총 80명의 여성이 참여했고 항목 1은 요양 보호사, 마트 캐셔, 미화원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 항목 2는 교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 혹은 정규직 노동 , 항복 3은 기타 자영업으로 나누었다. 항목 1에 대답한 경우 젊은 시절에도 불안정한 일자리였는지, 안정적인 일자리였는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문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설문 결과 항목 1은 80명 중 57명, 항목 2는 80명 중 18명, 항목 3은 5명이었다. 항목 1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항목 1의 답한 57명은 다시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일자리의 안정성에 대한 투표를 해야 했다. 57명 중 40명의 여성이 이전에도 불안정한 일자리였다고 말했으며, 17명의 여성들은 그 이전에는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설문 요약 결과 순이 세대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 여성들의 삶은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평생토록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에 급해 생계 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은 대부분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둔 뒤 어느 정도 아이가 큰 후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식이었다. 이들이 새롭게 구하게 된 직장은 대개 환경 미화, 요양 보호사, 마트 캐셔와 같이 비정규직 직업군이 다수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 활동 지수는 OECD 국가에서 몇 위를 차지할까. ‘남성 혐오를 중단하라, 역차별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어쩐지 지표는 너무나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여준다. 남녀 임금 평등과 여성의 구직 용이성, 고용 안정성을 포함한 여성 경제력 향상의 정도를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척도들을 반영한 이 측정대에서 한국은 32위를 차지했다. 33개 국 중 32위인 나라는 그만큼 여성 노동의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 많던 순이들은 여전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에 대부분 머물러 있는 실정이지만 이들의 바램은 아랫 세대들이 결코 이 루트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과연 그 바램이 잘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일까. 그 시대 순이들의 희생들이 헛되지 않은 것일까.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룬 이유일 것이며, 지금도 다른 글들을 쓸 때와는 달리 한 글자 한 글자를 어두운 안개를 헤매는 마음으로 써내려 가고 있다. 실제 누군가의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글들은 함부로 쓸 수가 없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다시금 인터뷰를 정리하고 글을 쓴다.
끝없는 펜데믹 사태 속 계속해서 멀어지게 되는 타인의 삶, 그리고 어쩐지 우주에 남겨진 듯 계속해서 고립되는 우리네들의 삶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
결국 우리가 이런 혼돈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 계속해서 서로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일밖에는 없다고 다시금 다짐하고 생각하게 된다. 잊고 살아가기 쉽지만 잊을 수는 없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져버리지 않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일까. 쉰들러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은 온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작은 관심은 그렇게 어떤 한 생명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가 그렇게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내가 나의 운명을 바꾸는 존재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나는 우리가 언제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성은 바다와도 같아서, 몇 방울이 더럽다고 해서 바다 전체가 더러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우리가 타인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말했으면 한다. 타인의 삶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세상을 통해 나의 삶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모두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하기를, 그렇게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