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사랑
최근 아이들의 수업 자료로 영화 ‘Her’을 보다가 느낀 것은 이 영화의 가상 현실이 어느 정도 우리 사회를 꽤나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의 편지를 대필하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삶, 연애로 인한 감정 낭비는 귀찮고 고독은 해소하고 싶어서 구매하게 된 가상 AI 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 한 마디로 감정이 귀찮은 것이 되어버린 인간의 삶이다.
영화를 보고 많은 철학적인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런 감정이 귀찮아져 버린 삶이라면 그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사는 것일까? 돈? 명예? 사랑도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그들은 대부분 매일 같이 출근하고 퇴근 후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고, 퇴근하고, 게임을 하는 .. 돈버는 기계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을 보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돈을 번다고 해서 얻을 건 뭐지?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갖고 싶은 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평생 존재하게 될 욕구인데, 그렇다면 그 삶은 평생 돈을 벌고 갖고 싶은 것을 구매하기 위한 삶인가? 월급이 들어오면 쇼핑을 하고, 기계처럼 돈을 벌고, 또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면 쇼핑을 하는.. 그건 도대체 무슨 삶이지?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아니지 않나. 나도, 그들도. 이건 아니지 않나.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여전히 현실 세계에서 온 몸으로 햇살과 파도의 일렁임을 느끼고 사랑을 느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상 현실의 발전은 과연 인간의 세상을 편리하게 만든다. 수업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대화 몇 마디를 통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기프티콘이나 메세지 하나면 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그게 편할 때가 있다.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떠한 죄책감이 나를 감싼다. 이게 맞나? 우리 삶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나? 이게 맞는 걸까? 내가 무언가 중대한 책임감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편하기야 하지만 어쩐지 마냥 편한 것이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난 학기 수업은 거의 매일 학교를 나갔다. 20년에 코로나를 맞은 뒤 자유로운 삶을 살아오던 내게 있어 적응되지 않는 삶이었다. 의무적으로 밖을 나가는 삶이니 더 정성들여 내 자신을 가꾸고 살폈다. 힘들기도 했지만 좀 더 활기찬 모습이 된 내 모습을 보며 이게 진짜 맞는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고립해있던 내 속에서 빠져나와 직접 다른 사람을 만나도 부딪히고, 온 몸으로 희노애락을 느끼며 이제야 내가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이게 맞지! 드디어 내가 나의 진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하루하루 기특하고, 뿌듯하고 행복해졌다.
가상 현실이 지배했던 삶과 지난 학기를 비교하면, 몸 자체는 대면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확실히 편했다. 하지만 온몸으로 내 삶을 느낀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경험으로 다가왔다. 진짜 나의 삶, 나의 경험. 요새는 가상 현실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가상 현실이 어디든 쉽게 데려다 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떠한 책임감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인간이 여행을 가기 위해서, 혹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들이는 노력과 직접 그것을 온몸으로 겪는 과정 속에서의 고통과 갈등, 그리고 그것을 겪고 난 다음의 공허와 감정 처리를 생략한 삶이 과연 진짜 옳은 삶이 맞을까? 우리는 그런 좌충우돌을 통해 이전의 자신보다 조금 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다음 상황에서는 좀 더 의연하게 행동하고, 심혈을 기울인 노력을 들이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에 비해 가상 현실을 통한 만남은 그런 걸 전부 생략할 수 있기에 별 노력이 들지 않는다. 맘에 들지 않으면 대충 몇 마디를 나누다가 끝내버리면 된다. 귀찮네.’ 하고 끝내버릴 수 있는 인연. 그렇게 점점 인간은 관계에 있어 별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가 되어 간다. 마치 영화 ‘Her’ 속의 테오도르 같이.
요새 데이팅 어플이나 에이아이, 메타버스에 내가 회의적인 이유는 인간이 바로 그런 책임들을 져버리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 직접 아날로그적으로 들여야 하는 노력의 재미가 있는건데! 직접 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알아가고, 그 사람의 취향에 대해 알아가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향수를 내 후각을 통해 직접 느끼고, 부드러운 손의 촉감이나 햇빛에 비춘 머리칼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알아가는 간질 간질한 재미가 있는건데. 그런 재미를 잃어버린 채로 사람들은 가상 현실을 통해 너무도 가볍게 상대의 취향을 간파한다.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구나. 이런 건 나랑 안 맞는데? 패스. 그렇게 가볍게 패스해버린다. 누군가와 맞춰갈 노력도 져버린 채로 그저 패스를 해버린 뒤 다시금 새로운 인연을 찾을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옳은가? 정말? 세상에 백퍼센트 잘 맞는 사람이 있나? 모든 갈등 상황이 찾아올 때 마다 그럼 헤어져야지. 하고 헤어지는 게 정말 옳은가?
우습게도 지난 내 관계들을 생각하면 모두 그랬다.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게 있으면 그냥 회피해버리는 삶. 가끔은 그것에 후회했지만 한편으로 그 관계를 끄는 것도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합쳐져 내가 선택한 행동은 차단 버튼이었다. 차단을 함으로써 가볍게 그 사람은 나의 바운더리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그렇게 쉽게 남남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우리가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되기 위해 들였던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는 것이지? 갑자기 온갖 속상함이 밀려오고 차단을 한 것에 후회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눌러버린 차단 버튼은 돌이킬 수 없었으며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떠나 보낸 마음을 혼자서 정돈하려 애썼다.
차단 목록 속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과연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던걸까. 쉽사리 헤어지잔 말을 하고 택해버린 손절들이 과연 맞았던 걸까. 어떠한 갈등 해결의 노력도 무엇도 없이.
영화 속 테오도르를 보고 한심하다 생각했다. 비겁해. 진짜 사람은 예측 불가능해서 싫은거지? 그래서 로봇이랑 사랑에 빠진거야. 하지만 그를 보고 다시 돌아본 내 모습 역시 그와 똑같기 그지 없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낭비가 무서워서 회피하고 끊어냈던 나날들. 나나 그나 똑같은 작자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나와 그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게 맞는지를. 관계의 책임, 행동의 책임, 노력의 책임과 같은 것을 생략하는 삶이 맞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