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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29. 2020

천국의 악마들 / 동물농장




  고대하던 천국에 발을 들인 김착한씨는 할 말을 잃었다. 파란 하늘 구름 위에 앉은 천사가 하프라도 튕기고 있을 줄 알았던 천국에는 손바닥만 한 박쥐 날개를 단 우스꽝 스러운 악마들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쌈박질을 해대는가 하면, 현대적이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도시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야~ 이 신참도 넋이 나갔군."


  그를 알아본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주변에서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 '정말 웃기는 표정이군.'하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지옥인가요?"

  그가 물었다.


  "아니 천국이지!"

  사람들이 말했다.




  나악당씨는 뜻밖에 지옥의 모습에 크게 안도했다. 튀김 솥과 끓는 유황불, 낫과 삼지창을 든 악마들을 대신에 준수한 용모의 천사들이 서로 재잘거리며 하프를 튕겼다. 새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걸려있는 천사들의 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기는 천국이야!”

  그가 외쳤다.


  "아니야 여긴 지옥이야."

  사람들이 말했다.


  천국의 악마들은 살벌한 악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 뼘만 한 박쥐 날개에 곱사등이 난쟁이, 일그러진 얼굴은 익살스러웠고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처럼 아둔하고 한편으론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대개 서로 싸우거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짓을 할 뿐이었다. 천국의 주민들에게 그것은 훌륭한 유희 거리였다.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과 모든 것이 제공되는 가운데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지, 또한 얼마나 우월한지 악마들을 보면서 재잘거렸고 악마들을 보면서 느꼈다.


  김착한씨는 생각했다.

  이곳의 천사는 바로 우리라고.



  천사들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외출을 할 때면 그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공중을 한 바퀴 활강하다가 적당한 구름에 걸터앉아 하프를 튕기든지 재잘거리던지 하는 게 그들의 일과였다. 그들도 역시 악마처럼 지옥의 주민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어두워질 때면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집으로 향했고 지옥의 주민들은 지상의 그저 그런 아파트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옥의 주민들은 그런 평범한 일상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은 누구나 천사들을 선망했고 천사를 사귀거나, 천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간혹 천사들이 실수로 떨어뜨린 하프나 장신구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었다. 오랜 지옥 생활에 정신이 나간 녀석 하나는 스스로 모형 날개를 만들고


콘크리트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나악당씨는 생각했다.

  '이곳보다 끔찍한 지옥은 없어'라고.





동물농장


  22C 초 인류가 거짓말처럼 멸망하고 세상은 잠시 평화를 맞이하는 듯했으나 너무나 무료했던 신은 그간 인류가 독차지했던 지성을 균등분배 하기 시작했으며, 불과 반세기 만에 온갖 동물들이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한 진화를 겪게 되었다.


  그들은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었고 문자, 화폐와 같은 문명의 산물이 유통되기에 이르자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도시국가를 만든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반시설은 아직 쓸만해서 금세 영리한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으므로)


  그들은 토론하고 연설하며, 머지않아 법률을 제정하였다. 의회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차별하여서는 안된다는 법을 통과시켰고 그것을 윤리라고 불렀다.


  문제는 토끼들의 소송에서 불거졌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으므로 호랑이를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는 게 소송의 요지였다. 결의에 찬 토끼의 비밀결사들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무수한 동물들을 연합하였고 마침내 호랑이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져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주입받게 되었으며, 이내 순화되어 토끼의 친구가 되었다.


  귀여운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죄악인 것이다. 호랑이들은 감옥에서 죽거나 초식 동물로의 변신을 꾀했다. 호랑이는 토끼는 물론이고 이제 아무 동물도 먹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물론 그들도 결국 죽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순교자 같은 인상을 풍겼다.


  동물들은 수명이 짦았으므로 세대교체가 빨랐다. 토끼를 비롯한 대부분 동물의 찬성으로 통과된 '평화법'이 실행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세대가 거듭될수록 멸종하는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자, 곰, 치타, 늑대, 나중에는 심지어 고양이까지도


  때마침 동물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돌았다. 하늘 어딘가에 '슈가 캔디 마운틴'이라는 곳이 있어서 호랑이나 사자 그 어떤 동물이라도 토끼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윤리적 동물들이 죽으면 그곳에 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동물들이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고 멸종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지구 상에 토끼만 남게 되었을 때 그 엄청난 번식력으로 말미암아 지구 상의 풀들이 전부 다 사라지고 토끼 역시 멸종을 맞이한다.


  풀 한 포기 동물 한 마리 없는 지구를 바라보던 신은 너무나, 너무나 무료하였고 너무나 무료한 나머지 바이러스에 지성을 부여했다가 일주일 뒤 감기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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