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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29. 2020

코리안 할라푸드의 슬픔

초단편선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에서 사망한 해였다.


  스위스 유학시절 추억하며 상급자 코스에서 만리마 속도를 내고있던 그는 늘어난 몸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턴을 시도하다가 눈밭에 머리가 빻아 즉사하고 말았다. 한달이 채 못되어 대한민국은 거짓말 처럼 통일(당했)고 120배가 넘는 경제 격차의 충격을 완화하고자 대통령 jy는 현재 휴전선에 해당하는 자리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는 곳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가의 국민에게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과 매 주말 펼쳐지는 광화문 촛불시위에 jy는 골머리를 썩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결재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별 감흥없이 서류를 펼쳐 본 jy는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눈을 반짝였다. 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두 가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 였던 것이다.


  18년 5월 제주도에 발을들인 아말은 절망하고 말았다. ‘여기 사는게 너무 힘들다. 이슬람 레스토랑... 빵이 없다. 무슬림에게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 선불제 휴대폰으로 트위터를 올린 그는 눈앞에 놓인것은 컵라면과 데미소다 뿐이다.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하지 않은 돼지뼈로 우려낸 국물이 아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한국사람이 한젓가락 먹을때마다 ‘이순신 개새끼’라고 외치는 기분일테니 이해한다 쳐도 제주도에서 난민이 스스로 할라푸드를 찾아다니는 것과 할라푸드를 내놓으라고 깽판치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많은 난민들이 다시 돌아갔지만, 아말은 난민 임시 체류를 연장해가며 기약없는 난민 수용을 기다렸다.


  ‘통일 대한민국 근로자 모집 당신을 기다립니다.’


  서귀포시 해수욕장을 서성 거리던 아말은 아랍어로 쓰인 포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2년 계약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며 매끼 할라푸드를 제공하고 계약을 끝낼시 시민권을 주는 조건이었다. 아말은 더 볼것도 없이 지원서 서명을 마쳤다.


  2019년 함경도 특별자치구에 200여명의 난민 노동자가 도착했다. 작업반장 리화평은 김일성 군사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민군 대좌였지만, 지금은 작업반장이나 하고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그나마 숙청되거나 묻히지 않고 공무원 신분이라도 유지하게 된 것은 그가 아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이었다. 실의에 빠진 그앞에 실의에 빠진 아말이 다가왔다.


  “저희 그런데 다른건 안줍니까?”

  아말은 헬쑥한 얼굴로 강냉이죽 그릇을 바라보았다.

  “양이 부족해? 저기서 좀 더 떠가”

  리화평은 익숙한 아랍어로 답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강냉이죽이 담긴 거대한 단지가 있다.

  “그런거 말고 허머스나 파라펠, 양고기같은건 없습니까?”

  “없어 그런거”

  격분한 아말은 리화평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강냉이죽만 120일 째였다. 주체 격술의 달인 이었던 리화평은 아말의 주먹을 간단히 피하고 강냉이 죽 한국자를 아말의 식판에 담았다. 4m가 넘는 거리에서 정확히 식판에 강냉이죽을 떨어뜨리는 그의 운동신경에 아말은 전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디스 이스 코리안 할라푸드다”


  2년은 금방 지나갔다. 많은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몇 남지 않았지만, 아말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새로 도로가 뚫리고 휴전선 임시 검문소가 철거 되면서 통일 대한민국은 진정한 통일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아말이 시민권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저 cu를 찾아가 육개장에 데미소다, 의성마늘소세지를 사먹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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