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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3. 2020

부엉이 인간




  검은색과 윤기로 점철된 하나의 덩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까마귀는 아니었다. 닭처럼 날개를 홰칠 때마다 날개에서 손뼈의 형상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날개를 제외하면 머리가슴배의 분절이 구분되지 않았고 간혹 머리를 기묘한 각도로 틀어 보이곤 했는데, 그것은 조류의 형상이라기보다는 고양이라거나 혹 인간의 얼굴이 비쳐 보이기도 했다.

  이 까맣고 거대한 것을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몸피를 잔뜩 부풀린 이 괴 생명체는 부풀린 몸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줄이고 내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때서야 머리와 손이 구분되었다.  


  "커피라도 드시겠어요?"


  "부웡!"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커피를 들이켠 그는 고개를 선풍기처럼 돌려보였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닐까? 고성능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동공이 빠르게 조였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감동받은 모양이다. 답례인지 설치류의 시체로 보이는 토사물을 방안에 쏟아놓았다. 반쯤 삭아서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사랑해요."


  그는 내 눈은 빤히 응시하고 부리를 최대로 벌려 보였다. 입속이 다 들여다보여 기괴하다. 아마도 이해한다는 의미일 테다. 팔은 다시 까맣고 두툼한 깃털이 돋아있다. 그 품에 안겨서 얼굴에 손을 댄 순간 그의 부리가 떨어져 나왔다.


  잠시 후 깃털이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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