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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3. 2020

손가락이 할 수 있는 일



달보다 손가락을 바라보는 게 낫지 않나요?

그렇구나


스승은 손가락을 뻗어 빛이 새는 구멍을 막아버렸다

너무 어두워요


스승은 고민하다가 하늘을 가로로 길게 찢었다

이내 희미한 빛샘과 함께 붉은 물이 들었다


가리키기만 해서야 되는 일이 있겠니?


그 말을 들으니 해가 떠오르는 듯했다.

우리는 어째서 손가락을 보지 못했을까?


정오는 너무 밝아서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묘사는 누가 될까 두렵다


그날 밤은 다치기 싫어서

떠오르지 않기로 했다.


너무 어두워요


스승은 이번에도 손가락을 뻗었다

이번에는 손톱으로 하늘에 가느다란 구멍을 냈다

희미한 빛이 번져 나온다


초승달이구나


스승은 매일 밤 그러한 행위를 반복했다

상현과 하현 초생과 그믐에 각각 의미를 부여하면서 하지만


아이는 끝내 만족할 줄 몰랐다


내가 거기서 뭔가 할 수 있다면,

손가락을 움직여 대화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가리키기만 해서야 되는 일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느냐

물으셨지요


저희는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손가락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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