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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3. 2020

선풍기 속으로 사라지다


 

  이건 선풍기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하이마트에서 일했다. 국문과 출신으로 졸업 후 바로 취업한 곳이다. 아무튼, 그녀는 월말 패밀리 마켓에서 다이슨 선풍기를 염가에 구매했다.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물건은 새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날개 없이 뻥뚤린 모양으로 공기청정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


  그녀는 옥탑에 살았다. 창고를 쓸 수 있고 담배를 편하게 피울 수 있다 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멀쩡한 선풍기를 창고에 처박고 그 자리에 날개 없는 새 선풍기를 설치했다. 코드를 꼽고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선풍기 중앙에 파직하는 스파크가 일었다. 그녀가 사라졌다.


  일 년 후 여름, 새로 입주한 남자가 창고에 처박힌 선풍기를 꺼냈다. 플러그를 꼽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스파크가 터지고 여자가 튀어나왔다. 남자는 학생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나이는 어리다. 아무튼, 그녀는 기절한 남자를 깨웠다.


  업체에서는 순간적으로 역전류가 발생해 생긴 현상이라는둥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하며 불량에 대해 함구할것을 전제로12개월 분의 월급과 위로금을 건넸다. 동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묵묵한 그가 썩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당분간 쓸 돈은 충분했으므로 그녀는 소설을 썼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해, 일 대신 선택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소설 일부를 발췌한다.


  '남자 친구를 선풍기에 넣었다. 어떨  내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둘이 쓰기에 원룸은 좁았다. 돈은 금세 떨어졌다. 우리는 서로가 지겹거나 세상이 지겨울 , 혹은 돈이 없을  선풍기 속으로 들어갔다. 종종 리가 대체물로 세상에 던져진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 겉만 새로울 ,


  겨울이 오면 꺼내 달라던 남자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찬바람만 불었다. 나는 선풍기 플러그를 다시 꽂은 다음 재빨리 전원 버튼을 누를 생각이다. 스파크가 튀면 나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가 창고에 처박히고 나면, 누군가 또 문을 열고 이 방에 들어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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