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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02. 2020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 정태일 작가 인터뷰

INTJ의 글쓰기


발단


  2018년 짧은 글을 싣는 플랫폼 ‘바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작가분들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2019년 서울 국제 도서전에 주문 소설 작가로 참여하면서 몇몇 분들은 만나게 되었는데, 정태일 작가님은 뵙지는 못했고 단톡방에서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라는 책을 발간하여 서평 신청을 받고 계시길래 신청 후 서평을 쓰게(그리게) 되면서 기회가 닿아 만나 뵙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이 좁니다.


  작가님은 ‘스피치라이터’라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직종에 종사 중이다. 이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를 해보니 지금까지 네 권의 책을 내셨고 애니어그램에 조예가 있으셨다. 나와 띠동갑이셨지만, 같은 INTJ(INFP도 가끔 나온다고 하심) 유형이라 그런지 짧은 시간 이야기하는 동안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스피치라이터?


  ‘스피치라이터’라는 직업이 상당히 생소했다


  스피치 라이터는 ‘스피커’의 말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을 한다. 보통 기업의 회장님, 정치인 같은 높으신 분(?)들이 스피치라이터를 고용하여 언론과 접촉한다거나, 취임사, 고별사, 일상적으로는 건배사까지 작성하기도 한다. ‘글쓰기’하면 떠오르는 자기 충족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 기자, 르포작가와도 다른 포지션에 있는 직업 같았다.


  가장 유사한 포지션의 직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1500년대 유럽 패트론 체제 하의 예술가, 시인이 이런 형태의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은 귀족과 궁정, 교화 같은 후원자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썼다. 이 당시에는 소설보다는 ‘시’가 주요 콘텐츠였다. 이 시들의 주제는 주로 높은 분들의 업적을 기리거나, 교회/사회에 봉헌되는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스피치라이터의 자기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피치라이터는 글에 ‘자신’이 노출되면 망한다는 게 작가님의 말이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글에 자기가 없다는 건 좀 마음이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았는데,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스피치라이터였던 강원국 작가님은 ‘대통령의 글쓰기’와 ‘회장님의 글쓰기’를 쓴 이후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부분은 뒤에 더 다룰 생각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쓴다는 것, 아니 무언가를 하나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최근 이 문제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가 일주일 만에 번복한 적이 있다.(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무섭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하시는 작가님이라도 회사에 다니시면서 책을 내는 등 개인적인 영역을 글쓰기를 통해 아웃풋을 낸다는 게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  질문을 하니 크게 두 가지에 대해 말해주셨다.


1. 시즌과 비시즌이 있다.


  시즌은 '글을 직접 쓰는 단계'이며 비시즌은 '글쓰기를 준비하는 단계'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 단계를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 -> 자료수집 -> 일정 스키마를 이룸 -> 독특한 표현과 뛰어난 수사' 순서로 정리한 적이 있다. 시즌/비시즌 개념은 처음 접해봤는데, 내가 정리한 부분에 대입하면 '독특한 표현과 수사'가 들어가는 직접 글을 쓰는 단계를 시즌기,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일상적 자료수집이 들어가는 단계를 '비시즌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이런 식의 구분을 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비시즌이 너무 비대하고 산출물이 아무것도 없거나(이게 과도해지면 무력감에 빠진다.) 글쓰기 욕구는 강한데 도무지 쓸 게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시즌과 비시즌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바쁜 현대인의 제한된 일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시즌기의 태도


  작가님은 '스피치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쓰시다 보니, '자기 충족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나와는 그 태도가 다를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의외로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 시즌이든 비시즌이든 주변에 대한 관심, '안테나'를 계속 세워둔다는 점에서 비슷했고 이렇게 수집한 자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범위, 자신의 가치관, 태도 등이 시즌기에 있어서는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진다는 점이 그랬다.


  '혼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비시즌의 시기를 지나 '시즌'이 도달하면 생각과 태도가 달라진다. '바둑 잡지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바둑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마카롱 잡지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마카롱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라는 말이 재밌었다. 예시로 들었던 명로진 작가님의 '전지적 불평등 시점'역시 이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관점 하에서 기술이 이루어진 책이다.


  이런 부분이 INTJ가 갖는 특성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INTJ 유형의 키워드는 '전체적으로 조합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이 전체적으로 조합하는 대상은 사실 혼돈 상태(비시즌기)에 가까운 것들이며 이러한 혼돈을 파악하기 위해 강력한 직관(태도와 관점)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작두를 탄다'라는 표현만큼 좋은 게 없다. 나도 종종 쓰는 표현인데 작가님이 먼저 말씀하셔서 약간 놀랐다. '작두를 타다 보면 발이 베이지 않는지?'물어보니 '발이 베이면 맨발로 타는 게 아니고 양말 신고도 타고 구두 신고도 타고'하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준비를 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책을 내기 전과 낸 후에 달라지는 점이 있는지?


  '마술처럼 확 달라지지 않는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책'을 내는 것은 그렇게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책을 내기 전, 그리고 낸 후에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어보니 '마술처럼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는 책을 내보고 싶은 1인으로서 조금 김 빠지는 답변이긴 했지만, 책이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계속 쌓이는 것'이고,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처럼 자신의 기록이 정제된 형태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글을 쓰는 일은 특별한 자격증을 요하지 않기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스피치라이터'로서 책을 낸 경험이 일종의 라이센스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프리랜서, 예술가, 이렇다 할 공인 자격증이 없는 전문/특수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항상 작업이 좋을 수가 없다. 특히 그 문턱이 낮은 글쓰기의 경우 어쩌다 평균, 또는 평균 이하의 작업물이 나오게 되면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런 건 나도 쓰겠다.'라는 식이다. 이때 책을 냈다는 사실은 일종의 방탄복 역할을 해준다.


  나는 아직 책을 내본 적이 없고 글쓰기와도 별 상관이 없는 상담사 일을 하고 있지만, 마술처럼 삶이 확 달라지지 않더라도 책을 낸다는 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더 쓰면 글이 너무 길어져 1/2편으로 포스팅을 나눈다. 2번째 포스팅에서 다룰 내용은 1. 열등감과 반골 기질 2. 퍼포먼스 3. 개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맥락 없는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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