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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02. 2020

영국 최초 중앙은행의 탄생

어쩌면 최초의 코인열풍!


17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강소국가로 유럽의 금융 패권을 장악했다. 도시국가로 시작해 강한 해군력을 갖게 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에 식민지 착취와 대외교역 주도를 허락했고 그들을 해군으로 보호했다.


  이를 기반으로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은행(1609년)을 통해 정부가 직접 상인들에게 안정적인 화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기획 아래 탄생한 최초의 은행이로 이곳에서 발행된 화폐는 암스테르담 시가 보증하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발행한 어음이나 서류는 유럽 사회에 굉장한 신뢰감을 주었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


  사실 당시에 '지폐'는 언제든 종이 쪼가리가 될 수 있는, 그다지 신뢰할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암스테르담 은행이 완전히 금과 은을 관리하기 시작하는, 암스테르담 체제가 등장하면서부터 지폐는 힘을 얻기 시작 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이 국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다른 국가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같은 시기 영국의 사정은 이렇지 못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영국 국왕 윌리엄 3세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영국 내에서 정치적 기반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언제 네덜란드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서 이겨 왕위를 지켜야 한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국영은행이 없었던 당시 영국에서 전쟁에 필요한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했는데, 당시 윌리엄 3세는 연 10% 이자율을 보장하는 국채를 발행한다.


비슷한 시기 아이작 뉴턴은 주식투자에 실패해 큰돈을 잃는다


  1692년 발행한 이 국채는 영국 왕실은 목표한 금액 천만 파운드의 1/10에 불과한, 백만 파운드 수준의 판매 총액을 기록했다. 100년 후 발행한 1793년 영국의 국채 'consol'의 이자 4~5%에 비해 누가 봐도 높은 이자율로 볼 수 있는 국채가 이 정도 밖에 팔리지 않은 이유는 


  '이 당시 영국인들이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3세는 미적지근한 판매 실적에 이자율을 14%까지 올려주었지만 국채는 오히려 더 팔리지 않게 된다. 당시 영국인들은 중앙은행조차 없는 영국 정부가 발행한 말도 안 되는 이자율의 국채에 탑승했다간 언젠간 이자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외국인 출신 영국 왕이 발행한 국채를 사봐야 언젠가는 떡락해서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이 국채에 탑승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까짓것 우리도 중앙은행 하나 만듭시다!

  골머리를 썩고 있던 윌리엄 3세에게 손을 뻗은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업가 패터슨이었다. 이미 당시 영국에는 민간은행이 있었지만, 윌리엄 3세를 믿지 못한 은행은 영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이 당시 중앙은행 설립을 제안한 패터슨은 정부가 달라는 대로 얼마든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영국 정부에 몇 가지 특혜를 요청했다. 그 요구를 정리해보면,


 1. 정부의 모든 대출을 관리할 독점권

 2. 정부에게 돈을 대출해줄 독점권

 3. 다른 은행을 합작으로 설립할 권리

 4. 영란은행이 파산하더라도 그 채무는 출자금 이하가 되도록 하는 유한 책임제

 5. 국채를 담보로 하여 지폐를 발행할 권리


  즉 영국 정부의 돈줄을 쥐고 흔들 독점권을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윌리엄 3세는 영국의 모든 경제를 장사꾼에게 갖다 바치는 꼴임을 알면서도 12일 만에 120만 파운드의 출자금으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설립한다.


  윌리엄 3세는 연 14% 이자율의 국채를 발행하고도 모이지 않던 돈을 연 이자 8%에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빌린 돈의 2/3을 해군 건설에 투입하였으며, 이후 윌리엄 3세는 유럽을 제패하여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영국 왕임을 인정받았고 명예혁명 이후 의회 중심 영국의 근대적 기반을 닦는데 나름대로 공헌을 하게 된다. 신용에 문제는 좀 있었지만, 실력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이후 영국이 식민지를 늘려 미친 듯이 수탈했던 이유도 어쩌면...)






  대부분 중앙은행의 기원은 정부가 민간기업에 안정적으로 돈을 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은 전쟁에 필요한 많은 돈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빌리기 위해 영란은행을 필요로 했고, 그 외 많은 유럽의 중앙은행 또한 그렇게 생겨났다. 스웨덴 Riksbank를 비롯한 나폴레옹 전쟁 기간 전후 설립된 유럽의 중앙은행들 모두 전쟁 자금 마련 또는 그로 인한 빚 처리를 위해 설립되었다.(심지어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도 독립전쟁으로 인한 빚 처리를 위해 생겨났다.)


  재밌는 건 중앙은행 설립을 가능하게끔 도운 과거 민간 은행 운영자 중 일부는 이탈리아에서 현대 마피아의 뿌리를 이루는 직계 조상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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