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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an 22. 2021

연극 가스등(가스라이트)대본 독서 후기 1편

가스라이팅은 누가 당하나?

가스라이팅에 대해 생소하신 분들은 아래 글을 먼저 보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가스라이팅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일종의 '사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지능적 감정사기'이고, 그 방식이 범죄와 일상의 경계에 있습니다. 혹자는 범죄 등으로 확연히 티가 나는 사이코패스보다, 법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가능한 모든 이익을 취하는  소시오패스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즉 가스라이팅은 소시오패스적 이익 추구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소시오패스는 머리가 좋다. 머리가 좋지 않은 소시오패스는 돌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는 위협이 되지 않아 존재감이 0에 수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주로 눈에 보이는 폭력 없이 피해자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금전적이든 정서적이든 육체적이든 온갖 형태의 이익을 취합니다. 아무 이득이 없더라도 단순히 영향력 행사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 듯 매력적 이어 보이기도 하고, 수완이 있다면 사회적 성공을 거머쥐기도 합니다.




  '가스라이트' 대본을 읽으면서 영화 '아가씨'가 떠올랐습니다. 아가씨는 사라 워터스 작가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님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핑거스미스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문득 흥미가 생겼습니다. 아마 도미노처럼 연결돼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TMI로 박찬욱 감독님은 '테레즈 라캥'이라는 에밀졸라의 소설을 영화 '박쥐'에 차용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어떤 분위기나 내용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는 조금(손톱만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스등' 대본을 읽으면서 참 흥미로웠습니다. '마닝함'이라는 중년 남자가 어떤 식으로 '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마치 고전을 읽는 자세로 경건히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 정도 읽고 나니 재미가 붙어 읽기 시작했고, 각인물들이나 행동이 상당히 극적이긴 해도(극본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득력이 있었고,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일반명사화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 글부터는 가스라이트에 대한 스포 및 해석이 있습니다. 만약 이를 원하지 않으시면 위 업로드한 대본을 먼저 읽어보신 후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피해자인 부인은 어떤 사람인가?



  극은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물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 의미를 찾기 좋은 부분입니다. 



  부인은 약 34세가량 되어 보이며, 젊은 시절에는 대단한 미인이었던 것 같지만 현재는 '초조하고 겁을 먹은 듯한' 인상입니다. 부인은 1막 초반부터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마닝함 : 그냥 웃고 싶을 땐 희극을 택하게 될 것이고, 울고 싶을 땐 비극을 택하게 되겠지. 

부 인 : 난 지금 심정 같아선 웃고 싶어요. 물론 우는 것도 끔찍이 좋아 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하고 같이 가는 거라면 전 희극이든 비극이든 아무거라도 다 좋아요. 

마닝함 : 당신 요새 건강도 아주 좋아진 것 같은데. 그래, 당신이 가고 싶다고 할 때 언제고 같이 가보기로 하지. 

부 인 : 당신 요새 나한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우로보로스 문양




  1. 자기 의견이 없다.


  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연극을 보여주겠다고 말한 남편(마닝함)에게 '당신과 함께라면 뭐든 좋다'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마닝함이 시큰둥해 하며 이리저리 대답을 회피하고 면박을 주자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대신 '낸시'라는 젊은 하녀에게 의견을 물어봅니다. 이는 '판단'에 있어서 대부분을 남에게 위임한 채로 살아가는 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 자기 비하적이다.


  작중 부인은 자기를 비하하면서까지 자신의 판단력을 계속 의심합니다. 이는 '마닝함'의 세뇌, '가스라이팅'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부 인 : 이봐요! 난 정신분열증 환자예요. 뭘 보고 내 남편 되는 사람을 범인이라고 단정하시는 거죠?


로우그 : 부인!


부인 :말씀해 보시란 말이에요.


마닝함은 부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부인을 몰아붙입니다. 그는 부인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끊임없이 이러한 세뇌를 지속하게 되는데, 여기에 전도된 부인은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자기 비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아는 변호사님 유튜브 썸네일



  이혼과 관련한 상담을 하고 계신 '아는 변호사'님입니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를 - 면박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지만, 가스라이팅에 유독 취약한 성격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의 꼬리를 문 뱀처럼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 그런 성격이 된 것인지, 그런 성격을 타고나 ->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되는 것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점은 이 순환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착한 것과 약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선하고-강하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위 표는 지나치게 단순한 분류이지만 약하다는 이유로(예를 들면 가난하다는 이유) '선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류입니다.(언더도그마라고 부르더군요) 반대로 부자는 악하다고 규정하는 것 역시 강한 것과 악한 것을 혼동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위 변호사님이 '가스라이팅은 선택이다'라고 말한 것은 당신(가스라이팅 피해자분)이 악하다는 것이 아닌, 강해져야 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코디펜던트, 에코이스트, 이스케이프 고트와 같은 용어를 붙여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어들은 다 다르지만, 주로 동정적이고, 우유부단하며, 공감능력이 높고, 자존감이 낮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영화 아가씨에서는 '아가씨'를 등쳐먹으려 한다.                                


  이는 연극 '가스라이트'에서 부인이 가진 특징이기도 합니다. 조력자인 '로우그'가 없었다면, 극 내에서 부인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재산을 강탈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스라이팅의 핵심은 '자신 스스로 -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결국 자신의 인생을 지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자신을 의심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떤 사람이 되었든 남에게 통제권을 넘기게 되는 순간, 인생이 기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남편 '마닝함'이 어떻게 '부인'을 '부인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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