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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an 18. 2021

영화 블라인드 리뷰, 사랑의 복잡성(스포 다량 보유)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자택근무를 하면서 최근 생활이 집-집-집-집에 수렴하여, 영화라도 한편 봐야겠다 싶어서 보고 온 영화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루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짐승처럼 난폭해진 그를 위해 어머니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하지만 다들 오래가지 못해 그만둔다. 새로운 낭독자로 온 ‘마리’가 첫 만남에서부터 루벤을 제압한다.(중략) - 영화소개


루벤에게는 손이 눈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감정은 복잡하다.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 배우님)은 부잣집의 잘생긴 도련님이지만, 시력을 잃고 예민함과 난폭함에 휩싸인 채 살아갑니다. '마리'(핼리너 레인 배우님)는 그런 루벤을 완력으로 제압하고 책을 읽어줍니다.  극 초반 몇몇 장면들은 액션이라는 장르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더라구요(농담입니다.)


  이들은 곧 사랑에 빠집니다. 마리는 흰 머리카락과 많은 나이, 수많은 흉터를 지닌 여자이지만, 루벤의 상상 속에서만큼은 '완벽한 여자'로 자리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라도 삶의 희망을 잡아가는 아들을 위해서인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리는 어린 시절 끔찍한 학대를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루벤의 폭력을, 마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이내 제압해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바깥세상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독립심을 기를 것을 요구하기도 하죠.


  그동안 마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고, 온갖 패악질을 하며 자라왔던 루벤에게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게 거짓 투성이인 아가씨


  루벤은 곧 마리(자기 상상 속의)를 사랑하게 되고, 마리 역시 너무도 매력적인 미소년인 루벤을 사랑하게 되고 맙니다. 사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이전까지 마리는(적어도 책으로 루벤의 뚝배기를 후려치던 시점까지는) 내성적이지만 강하고, 원칙적인 사람이었지만, 루벤을 마음에 두고서부터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온갖 콤플렉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루벤에게 마리는 '완벽한 여자'이지만, 현실의 마리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테레즈 라캥이 생각난다.



  사랑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실'은 꽤 높은 순위에 속하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꺼내두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가급적 상대방이 나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가공되었을지언정 상대방에게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벤이 '진실'을 보게 될 수 있게 될 즈음 마리는 사라지고, 루벤은 홀로 남습니다.




블라인드 뒤에 있는 마리를 어루만지는 루벤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루벤을 만나려 하죠?


  개인적으로 못돼 처먹었다고 생각되는 인물인 빅터(의사) 대사입니다. 하지만  대사만큼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리는 아주 오랜 세월 '부정당하며'살아온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깊게 내면화된 수준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안과 의심의 연속입니다. '자신사랑받을  없다' 생각이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마리는 루벤이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지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양가적 감정 사이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기도 하죠. 하지만 '진실'이 어찌 되었든, 마리를 사랑하게 된 루벤은 여전히 마리를 사랑하고, 마리도 루벤을 사랑하지만 '진실'을 보라며 오히려 루벤을 다그칩니다.(그럴거면 왜 다가온거야...라지만 이해가 된다.)




  루벤의 선택은 흥미롭습니다. 논리로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영화이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탐미주의적인 결론이겠지만, 저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모든 것을 놓고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한없이 이상적이고, 실천하자면 무모하며 괴로운 일이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https://youtu.be/dBvPsZ8RaA4


제가 애정해 마지않는 김사월 x 김해원 님의 '비밀'을 공유해봅니다.

영화와 감정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가사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거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겠지

나를 아껴줘

아니 그냥, 내버려둬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나의 마음이 너에게 전해질수록

이해 받을수록 우리는 빛을 잃겠지

나를 아껴줘

아니 그냥, 내버려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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