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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l 17.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탈모르파티

(옴니버스/초단편/코믹)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키틴이라고 생각한다. 케라틴이라고도 부른다. 케라틴은 풍뎅이 같은 곤충의 외골격을 이루며 동물의 뼈, 깃털, 뿔, 발톱에도 케라틴이 분포해 있다. 반질반질하고, 단단하며, 쉽게 변하지 않고, 강한 인장강도를 지닌 단백질 조직이다. 키틴군의 영양제는 뼈, 연골 건강에 도움을 준다. 소위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은 ‘비본질적인 것을 내어주고 본질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한마디 더 하자면, 전쟁이 날 때 군인들은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남기고 전장에 투입된다.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싶다.    


  나는 본질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아버지는 머리가 풍성하다 못해 빽빽하고, 어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까지 가족력이 없는 축복받은 집안이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십 대 중반이 지나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정수리가 은근히 비쳐 보일 정도로 머리숱이 줄어들었고 이마 라인까지 후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탓, 계절 탓을 해보았지만 사촌형 들도 30대 중반이 지나면서 유전성 탈모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벗겨진 것을 목도하고 절망에 휩싸였다. 우리 셋은 누가 봐도 비슷하게 생겼고, 체구도 비슷했으며, 목소리까지 닮았는데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가장 어렸던 내가 머리숱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이마저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범인은  증조할아버지가 아닐까? 


  미친 사람처럼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장담하건대 ‘미친 사람처럼’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30대가 되었지만, 여자친구도 없었고(사촌 형들은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에 모두 결혼했다.), 박봉인 직장에, 이렇다 하게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데 머리카락마저 잃을 수 없었다. 탈모에 좋은 음식, 약, 시술, 심지어 역사까지 공부했다. 공룡의 이름을 줄줄 꿰는 5살 남자아이처럼 광적인 몰두였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탈모의 치료를 시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편과 장미, 아카시아즙을 배합해 만든 탈모약으로 치료를 시도했지만 좋은 향기만 날 뿐 머리카락이 자라나지 않았고 두 번째로 비둘기 똥과 고추냉이를 배합하여 ‘머리카락용 비료’를 만들었지만 지독한 냄새만 날 뿐 머리카락은 한 올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시한 수단이 남성의 소중한 부분을 자르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다고? 하지만 의학의 아버지답게 ‘남성’이 탈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간파하고 있었다는 게 나는 놀라웠다. 남성형 탈모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5-AR라는 효소를 만나 DHT호르몬으로 바뀌어 모낭 세포를 공격함으로써 발생한다. 탈모약으로 불리는 프로페시아와 두타스테로이드는 모두 5-AR효소를 억제함으로써 더 이상 탈모가 진행되는 것을 막는다(안타깝게도 머리카락이 새로 나지는 않는다.)  여기서 탈모인은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다. 약을 먹지 않고 대머리독수리로 사느냐, 약을 먹고 내시로 사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그리고 나는 고심 끝에 내시의 길을 선택했고, 먹어본 결과 우려했던 부작용은 없었다. (내시는커녕 대장군에 가까웠다.) 우려했던 탈모도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본질을 지키는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돈이 든다는 말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탈모 치료의 특성상 매월 14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최저 시급에 달하는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미친 듯이 찾아본 결과 이미 프로페시아 계열의 약은 시효가 되어 복제약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특히 인도에서 생산되는 복제약은 성분이 같지만 1/4 수준의 가격으로 해외직구가 가능했다. 나는 1년 치 인도산 프로페시아를 구매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사태가 발발했다. 매일아침 약을 먹고 출근하면서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몇달만 쓰면 되겠지, 코로나도 곧 잠잠해지겠지 싶었는데, 2020년은 괴질과 함께 증발해버렸고 어느덧 2021년이 다가왔다.


  설을 앞두고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인도에서 직구 해온 프로페시아가 전부 떨어졌기 때문이다. 구매처에서 코로나로 인해 해외직구가 지연된다는 공지가 올라와 며칠 약을 끊고 기다려보았지만, 다음 올라온 공지는 놀랍게도 해당 공장에서 코로나가 발발해 언제 배송을 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스트레스받지 말자, 스트레스받지 말자’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되뇌었다. 스트레스는 탈모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설 하루 전 연차를 냈다. 서울에서 일이 끝나자마자 광주로 내려간 다음 다음날 오전 병원에 가기로 했다. 비싸긴 해도 더 이상 약을 미룰 수 없었다. 최소 인도 공장비 복구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게 머리카락을 위해 상책이었다.


  “얘 너 어디 가니?”

  엄마가 말했다.


  “병원 좀 다녀오려구요.”


  “어디 아파?”


  “아…. 뭐 별거 아니에요”


  차마 체면이 있어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병원은 설 연휴 전날이라 그런지 환자로 붐볐다. 코로나가 극성이라 체온을 재고 손 소독제를 바른 다음 접수증을 뽑았다. 진료까지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한번 앞머리를 까보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앞머리를 올려 보였다. 선생님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처방전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프로페시아밖에 처방 못 해 드려요. 2달 치 드릴까요? 3달 치 드릴까요?”


  “3달치 주세요.”


  “약값은 42만 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2달 치 주세요.”


  병원을 나서며 기원했다. 앞으로 2개월 안에 어떻게든 인도 공장이 복구되고 약이 수입되기를, 월세에, 식비에, 지출 해야 할 돈이 많았다. 반강제로 대머리독수리의 삶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2달 치 약값에 자전거 두 대를 태웠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어려웠다. 원체 잠자리를 가리는 편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로마 황제였던 카이사르도 탈모를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쇠하는 머리숱만큼 자신의 권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나? 밤마다 마사지를 받고 양모제를 발랐지만 그런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2000년이 족히 지난 지금에 와서도 풀지 못했음을 미래인인 나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너 어디 많이 아프니? 피부병 도진 거야?”

  휴대폰 너머로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려서 예민한 피부로 고생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아차 싶었던 게, 탈모 약을 처방받고 난 구매 영수증과 봉투를 그대로 집에 두고 왔다. 청소하시다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으나 28만 원이라는 높은 액수와 동네 큰 병원의 이름이 찍혀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어…. 엄마 별거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졌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눈앞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떨어졌다. 눈물이 났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면서 빠지는 머리카락의 개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환절기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약이 몸에 받지 않는 것인지, 잠깐 끊었던 그 기간 축적된 DHT호르몬이 이제서야 두피를 공격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뿌리는 약, 먹는 약, 비타민제를 총동원해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어 요즘 머리카락 빠지네?”

  직장 동료가 눈치 없이 말했다.


  마음 같아선 책상을 뒤엎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사람 좋게 웃어 보이고 말았다. 동료 직원들이 몰래 주식 앱을 보거나 옷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탈모 샴푸를 검색했다.


  그날 밤 스님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스님이 나의 목을 조르더니 점점 머리카락이 풍성해진다. 나는 스님의 머리카락이 풍성해지는 만큼 머리숱이 줄어들다가 마침내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의 가장 본질은 머리카락이지, 썩거나 변하지 않잖아? 이제 너는 본질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하하하하!”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새벽 두 시였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까보기도 하고 손거울로 뒤통수를 비춰보기도 했다. 뭐랄까, 머리카락이 빠진 것도, 그렇다고 빠지지 않은 것도 아닌 모호함이 최저 시급에 3년째 사람을 부려 먹는 직장이라거나, 30대에 와서도 비자발적 독신주의자가 된 나의 처지와 겹쳐 보였다.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모호한 것이다.  


  나는 가위를 가져와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뭉텅뭉텅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대충 짧아진 머리는 유튜브를 보고 면도기로 밀었다.(현직 스님분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머리카락 따위가 뭐라고 그토록 애를 썼을까? 체면이 뭐라고 가족까지 속이며 혼자 속앓이를 했는지 머리를 다 밀고 보니 후회스러웠다. 새벽 네 시, 카이사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머리카락들은 마침내, 루비콘강을 건너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세수를 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감을 수 있음을 깨닫고 감탄했다. 옷을 챙겨입고 뿌리는 탈모 약에 습관적으로 손이 갔으나 도로 내려놓았다. 문을 열고 집 앞을 나서는데 머리가 상쾌하다. 아모르파티, 독일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이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잔인하고 아름다운 말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남몰래 눈물을 쏟아냈던 시간, 체면 차리던 시간들이 아련한 추억처럼 다가왔다. 나는 내 머리카락이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내 인생은 탈모르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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