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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16. 2021

쉬면서 하는 생각

  요 며칠 일도 새로 시작하고, 백신도 맞고, 병도 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부터 막연히 신중함이란 한 가지 행동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요소를 고려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려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거나 결과물을 낸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틀림없이 느낀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고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행동을 하지 않고, 말을 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놀랍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할 말이 없어지는(ㅋㅋㅋㅋ)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더랍니다.


  통으로 된 문장을 결론조로 이야기하는 법, 많은 원저와 통계 자료를 인용하고 소화해 나타내는 법, 몇 가지 요소를 정해놓고 상황을 거기에 대입하여 나타내는 법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지식인 계층(을 표방하는)이나 칼럼니스트는 텍스트를 잘 직조해놓고 자기 생각을 보태는(그리고 인용 조로 17~20세기 서구 철학/인문학 사상을 끼얹는 형태)로 글을 씁니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선입견 그대로 대입하여 현재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왜곡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문 실력이 있거나, 이전에 쌓아둔 권위가 있다면 취향이 맞는 독자층에게는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당사자성이 부족하고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현학적이고 무용한 글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긴 글을 잘 읽지 않는 오늘날의 추세를 생각해 보면 그 직관성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원저와 통계자료를 객관적으로 인용하고 나름의 관점을 곁들여 쓴 아주 학문적인 글의 경우(논문 등)은 그 사실을 바로 본다는 점에서 철학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단 그 전달 방식이 칼럼이나 포스팅에 비해서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력의 세 가지 요소로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를 꼽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달 방식은 로고스(논리력)은 갖추되 파토스(감정에 호소)와 에토스(화자와의 연결성)이 떨어져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유튜브에 사물궁이나, 너진똑 같은 분들이 이러한 정보(논문/저서)에 에토스와 파토스를 부여해 재생산 - 전파하는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감정도 비중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요소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건이나 상황, 생각을 대입하여 나타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로 포스팅을 하거나 가벼운 칼럼, 만화 등에서 나타나는 양식 같아요. 책으로 지어지는 지식은 보편성을 담보로 합니다.(특정 목적을 지닌 실용서는 예외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느 시대에 읽어도 보편적인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저는 책을 정보를 염장해 말린 것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서 지식이나 정보는 우유와 같은 유통기한을 지닌 듯합니다. 적시성을 잃은 정보는 상한 우유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보 그 자체보다 정보를 가공하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몇몇 참고할만한 이웃분들이 보여서 이웃분들이 쓴 글의 요소를 엑셀에 옮겨 보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어요. 핵심은 정확한 정보를 -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것의 최대 단점은 행동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고려하는 요소가 적을수록 행동력이 좋다는 말로 맞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탬플릿도 미리 만들고, 계획도 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이 시작되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무언가를 시도해보는 것도 용기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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